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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Apr 19. 2021

#. 프롤로그, 밤비노 캠프의 시작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연애 시절의 데이트 절반은 등산으로 보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을 위해 여름을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 내내 등산을 했다.

봄에는 꽃구경을,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겨울이 되면 눈꽃 산행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더운 여름에는 수영장과 워터파크에서 휴가를 보냈다.


뒤뚱뒤뚱 올라가던 나는 어느새 날다람쥐가 되었고 남편은 저 세상 텐션을 찍었을 때,

우린 캠핑을 시작했다.

소소하게 중고로 산 콜맨 텐트 하나로 시작해서 체어, 테이블, 코펠 등 필수품들만 대충 준비해서 둘이서 여름휴가 3박 4일을 캠핑으로 보냈고 어느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했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얼마 뒤 준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했던 캠핑 장비들은 베란다에서 파릇파릇했던 본연의 색이 바래지고 있었다.

준이가 돌이 지났을 때, 호기롭게 원터치 그늘막을 새로 사서 한강 나들이를 했다.

울고 보채는 바람에 안고 돌아다니느라 그늘막에 앉을 틈도 없었고 봄 향기를 맡을 정신도 없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고 우린 캠핑은 꿈도 꾸지 않았고 그늘막 조차 고이 접어두었다.


우린 맞벌이로 온전히 육아에만 전념하며 건조기에서 바짝 말려 물기 하나 없는 영혼으로 쉴 틈 없이 하루를 몇 개로 쪼개며 지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개구쟁이가 된 준이는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5살이 되었다.


어느 날 페파 피그를 보던 준이가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고 해서 퇴근한 아빠와 함께 세 식구가 아무도 없는 깜깜한 아파트 놀이터에 누워서 별을 보았다.

또 어느 날은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 준이가 소풍 갈 때 도시락 통이 필요하다며 집어 들었다.

아침에 틀어준 페파 피그에서 페파네 가족이 소풍을 갔다며 우리 가족도 소풍을 가자고 했다.


"소풍에는 텐트가 꼭 필요해! 아빠 우리 텐트 있어?" 준이가 물었다.

"그럼 텐트 있지!... 아 근데 그냥 둔지가 아주 오래되었는데..."

"텐트 필요해!"


주말이 되어 예전에 한강에서 썼던 추억의 그늘막을 꺼내 들고 도시락 통에 준이가 좋아하는 치킨볼을 가득 담아 야외 어린이 놀이터를 갔다. 예전에는 분명 세 식구가 다 같이 그늘막에 들어가 앉았는데 이상하다.

그늘막이 좁아도 너무 좁고 높이는 왜이리 낮은지 남편은 텐트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주변 다른 가족들의 그늘막에 비해 우리 것은 너무 앙증맞은 크기에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늘막 안으로는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햇빛 쨍쨍한 양지바른 곳에 앉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어깨 깡패 남편에게 말했다.


"그늘막을 큰 걸로 새로 살까?"

"보고. 준이가 또 소풍 가자고 하면 그때 사지 뭐."


그새 얼굴이 까매진 준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왔다.


"엄마! 너무 신나! 나 집에 안 갈래!"

"계속 계속 놀고 싶어!"

"우리 또 올 거지?"


신이 난 준이는 매일매일 텐트 치고 소풍 가고 싶다며 몸을 흔들었다.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소풍 오길 잘했다며 우리도 함께 웃으며 행복했다.

오늘 하루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너무 좋다며 행복하다고 말해주면 그걸로 우리는 마음이 꽉 찼고 그 하루가 참 행복했다.


그날 밤, 준이를 재우고 우리는 원터치 텐트를 새로 사려고 네이버를 뒤적뒤적거렸다.

지하 세계에서 딥 슬립으로 꿀잠 자고 있던 우리의 캠핑 욕구가 4년 만에 깨어났다.

우리가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 변해버린 캠핑의 세계는 그 옛날 화성 탐사만큼이나 신세계였다.

육아의 달인이 되는 동안 캠린이 돼버린 우린 캠핑에 빠져들었고 마음은 숲속 캠핑장에 가 있었다.

새로 이사 온 김포에는 캠핑을 위한 인프라가 넘쳐났다.  근처에는 유명한 캠핑 샵이 너무나 많았고 캠핑장도 집에서 30분 내외로 우리 코앞에 즐비해 있었다.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최적화된 캠핑 장비들을 알아보고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조건 저렴한 것보다 중복 투자하지 않도록 가성비와 성능을 비교해서 제대로 준비해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준이를 위한 캠핑이기에 우리의 장비 빨 욕심보다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와 함께 했을 때 유용하고 안전한 장비를 중심으로 준비했다.


자기 옷도 잘 치우지 않는 남편의 숨어있는 부지런함을 보게 되었다.

이 남자가 이토록 부지런하고 꼼꼼했던가!

당근 마켓도 열심히 하고 캠핑 카페에서 정보들도 수집하고 근처 캠핑 샵에서 득템을 해서 원했던 캠핑 장비들로 만만의 준비했고 2주 정도 걸렸다.


2021년 4월 18일,

개구쟁이 준이를 위한 우리 가족의 첫 캠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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