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산들애 캠핑장
"어쩌지, 이번 주 캠핑장 아직 수영장 오픈 안 했대."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지.
우리는 당연히 이쯤이면 수영장 오픈하겠지 생각하고 수영장 하나 보고 예약한 곳이었다.
실내 놀이장을 만들고 있다는 공지사항을 분명 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놀이장이 있다는 글이 없어 산들애 캠핑장 카페를 정독하니 코로나와 여타 다른 사유로 놀이장을 만들지 않기로 했단다.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캠핑장이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텐트 피칭하고 장비 세팅하는 동안 뭐하고 놀까 이리저리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준이 장난감까지 넉넉하게 챙기다 보니 다른 날과 달리 짐 가방이 하나 더 늘었다.
금요일부터 날씨가 별로이더니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캠핑은 망인가 보다 생각했다.
연인에게 우중 캠핑은 낭만이겠지만 5살 개구쟁이 아들이 있는 부부에게는 공황이었다.
"비가 꼭 내려야 한다면 딱 요만큼! 제발!"
아주 오랜만에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 편하게 준비해서 출발했다.
캠핑장 입구에 도착하니 방갈로와 함께 운영하는 칼국수집이 보였다.
관리실 앞에서 차를 세우고 남편이 예약 확인을 하러 간 동안 나는 칼국수 집을 보면서 '비 오는 날엔 칼국 수지' 하면 생각했다.
아무래도 칼국수는 패스해야 될 것 같다.
준이는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돌이 갓 지났을 때 친척 결혼식에서 국수 5그릇을 넘게 먹어서 좋아했는데 그 이후로 국수는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잔치국수가 제일 맛없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유치원 어버이날 미션으로 부모님 소원 들어주기 칭찬도장을 받기 위해 억지로 아기 국수 서너 번 먹은 것이 전부이다.
엄마가 되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잘 먹는 음식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잘 먹어야 잘 큰다는 어쩔 수 없는 고집을 아직 다 버리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아이의 선택권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는 꼭 내어주었다. 음식점을 가면 남편은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고 나는 항상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했다.
엄마만 왜 꼭 그래야 되냐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남편은 먹고 싶은 메뉴가 항상 있었고 나는 (아이 생각에 입맛이 숨은 건지) 딱히 먹고 싶은 메뉴도 없기도 해서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주문하는 편이다.
준이가 4살이 되면서부터는 밥 양이 늘어서 (엄마 아빠의 밥 양도 함께 늘어서) 1인 1 메뉴를 주문해서 함께 먹었다.
산들애 캠핑장의 규모는 아담했다. 사이트 사이 간격은 붙어 있는 편이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이트 뒤편으로 화장실이 보이는데 건물 사이로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보니 사람들이 입구로 다니지 않고 우리 사이트 사이로 지나다녔다. 밤새도록 사람들 자갈 밟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
공간 없이 붙어 있는 사이트의 텐트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아예 뒤편으로 다니라고 틈새 공간에 깔판을 갖다 놓은 캠핑장 쪽도 짜증이 났다.
이런 매너는 좀 지켜주었으면 한다.
예약한 우리 사이트 앞에 주차하고 준이가 차 안에서 키즈 유튜브를 보는 동안 트렁크에 가득 차 있던 짐을 꺼내놓고 남편은 텐트 피칭을 시작했다.
비가 계속 내릴 것 같아 타프 아래 텐트와 장비를 세팅하기로 해서 필요한 장비와 물건만 꺼내기로 했다.
남편이 텐트를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준이에게 우비를 입히고 캠핑장 산책을 하다가 작은 물 웅덩이에서 페파 피그처럼 첨벙첨벙 놀이를 하고 돌아오니 땀범벅의 남편이 맥주 한 캔 하며 한숨 돌리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가족의 첫 우중 캠핑이었다.
도저히 그리들 꺼낼 힘 조차 없다는 남편이 캠핑장 입구에서 본 칼국수 집에서 포장해 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캠핑장에서 배달음식은 아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무 맛있었고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다진 양념이 없는 칼국수와 국물을 준이 그릇에 담고 집에서 미리 해 온 쌀밥에 김을 말아서 준이에게 주었다.
"나는 텐트에서 누워있는 게 너무 좋아!"
준이는 칼국수는 먹지 않고 밥만 쏙 먹고는 텐트 안에 누워 있고 싶다고 했다. 준이가 텐트 안에서 딩굴딩굴 노는 동안 우린 칼국수를 먹으면서 우중 캠핑의 낭만을 아주 조금 느꼈다.
심심해진 준이가 시무룩했다. 물놀이가 하고 싶단다.
빨리 심심함을 없애주지 않으면 천둥 번개가 칠 것이 분명했다. 두뇌 회전이 빠른 남편이 어차피 비 와서 더러워진 차를 물총으로 씻겨 주자고 제안했다.
우리 셋은 일렬로 서서 비를 맞고 있는 차에다 대고 물총을 거침없이 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준이와 함께 놀다 보면 우리가 더 신나서 진짜 열심히 놀게 된다. 역시나 우리가 더 신났다.
다행히 옆 사이트는 비어 있어서 우리는 세차를 끝내고 물총 싸움을 시작했다.
옷이 흠뻑 젖을 만큼 정말 신나게 물총싸움을 했다.
신나게 놀았더니 배가 고팠다. 이른 저녁을 준비해서 먹기로 했다.
오늘은 아이스쿨러에 음식을 가득 채워 왔더니 마음이 든든했다.
먼저 무조건 맛있는 삼겹살과 미나리를 구웠다. 테이블에 올려놓기 무섭게 삼겹살은 순삭 했다.
비도 오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딱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딱 한병 챙겨 온 소주병을 이미 꺼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나와 남편의 마음이 척척 잘 맞는다. 괜히 불안하다.
남편과 나는 술을 잘 마시진 못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해서 술자리도 많고 술도 꽤 마셨었다.
그런 우리는 준이가 태어난 이후로 밥상에 그 흔한 맥주 한 캔도 올려두지 않았고 준이가 잠이 든 육아 퇴근 후에 맥주 한 캔씩 사이좋게 나눠 마시곤 했다. 우리가 챙기지 못한 찰나에 준이가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취기가 있다 보면 아무래도 방심을 하게 되기 쉬우니 안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밥 한 숟가락도 입에 겨우 넣고 일어나야 되는 시기라서 맥주는 무슨, 그럴 여유가 없던 것이 진짜 이유였을 것 같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지금은 맥주 한 캔 정도는 종종 마시긴 하지만 소주가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역시 꿀맛이었다.
삼겹살을 다 먹고 준이와 플레이도우 놀이를 하는 동안 남편은 대파 닭꼬치구이와 생선을 구웠다.
지난번 캠핑 때 준이가 뜬금없이 생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서 냉동실에 챙겨두었던 볼락 두 마리를 챙겨 왔는데 오늘 저녁의 별미였다.
고기도 가득 먹어 배가 빵빵한 준이도 야금야금 잘 먹었다.
공룡카드를 들고 텐트로 들어간 준이가 우릴 부르기 시작했다.
텐트에서 한바탕 공룡 놀이를 하고 이제 잘 시간이겠지 하고 시계를 보고는 흠칫 놀랬다.
8시밖에 되지 않았다니!
우중 캠핑의 진정한 묘미는 멈춰진 시간 있던 것이다.
준이가 또 배가 고프단다.
굽고-먹고-씻고를 3번은 한 것 같은데 또 배가 고프다고 하니 거짓말인가 싶어 재차 묻고 또 물었다.
남편은 불판이 지긋지긋하다며 그만 먹자고 했지만 준이는 그럴수록 너무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다.
배고픈 자식 앞에 부모가 무슨 힘이 있겠냐, 간식으로 준비한 재료들을 탈탈 털었다.
세상 제일 마음 아픈 소리 중 하나가 자식이 배고프다는 소리일 줄이야.
함께 요리하고 싶다는 준이와 와플 믹스를 만들어서 와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캠핑에서의 첫 와플 만들기였다.
고구마와 옥수수는 포일에 돌돌 싸서 숯불에 구워서 먹기로 했다. 지난번 옥수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또 샀다. 준이는 포일에 고구마와 옥수수를 싸는 게 제일 재밌었다고 했다.
"엄마, 나는 고구마랑 옥수수랑 이렇게 하는 게 제일 재밌어!"
"엄마, 택배 아저씨처럼 나도 포장 잘하지?"
택배 아저씨가 자기 장난감을 포장해서 보내주는 줄 아는 5살 아이에겐 포장 제일 잘하는 사람이 택배 아저씨이다.
와플과 고구마, 옥수수를 잔뜩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옆 사이트의 젊은 남자분들은 새벽 1시까지 떠들었고 사람들은 매너 없이 텐트 옆을 가로질러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오늘은 매너 운이 없는 날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불만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남편은 다음부터는 사이트를 꽉 채워서 세팅하거나 짐을 다 내려놔야겠다고 씩씩 거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맑고 청아한 하늘을 보자마자 분노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밤새 젖은 타프와 텐트도 바짝 말려서 철수할 겸 퇴실 시간을 연장했다.
다음날 사이트 예약이 없으면 퇴실 시간을 5시까지 연장할 수 있어고 비용은 2만원 정도였다.
느긋하게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양 옆 사이트 사람들이 철수하고 난 뒤 준이와 함께 비눗방울과 물총 싸움을 했다. 햇빛이 내려쬐니 물총 싸움이 최고 재밌었다.
오후가 되니 쨍쨍한 햇빛 덕분에 장비들은 물기가 마르고 뽀송뽀송해졌다.
놀거리가 없다고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준이는 이번 캠핑이 더 재밌었다고 말했다.
"엄마, 너무 재밌었어. 이전보다 더 재밌었어!"
이 한마디에 나와 남편의 힘듬은 뿌듯함으로 바뀌었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찼다.
그래 이 맛에 캠핑하는 거지!
- 강화도 시내 초입에 있어 캠핑장 위치가 좋았다.
- 사이트가 붙어 있는 편이다.
- 우린 21번으로 정말 비추이다. 22번도 함께 비추이다.
: 화장실과 흡연실에 오고 가는 사람들로 밤잠은 물론 낮에도 타프 안으로도 왔다 갔다 한다.
- 4번~ 13번 사이트가 괜찮아 보였다. 명당자리는 11번~13번이라고 한다.
- 개수대와 샤워실은 깨끗하고 화장실은 사용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중간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 수영장은 꽤 큰 규모로 오픈시 캠핑장은 성수기 요금으로 변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