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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Dec 23. 2021

#7 명절에는 시댁 말고 캠핑

 문경 용추계곡 캠핑장


나에겐 어쩌다가 굴러 들어온 복이 하나 있다.

명절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비교하면 제로에 가깝다.


나의 신혼집은 서울, 시댁은 경기도, 친정은 부산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지리적 조건의 덕을 본 케이스이다. 눈치 없이 휴가기간을 꽉 채워 다녀온 신혼여행으로 양가를 왕복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친정 엄마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부모님은 신혼집에서 하루 보내고 다음날 내려가기로 했는데 그럴 바엔 우리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신혼집에 계셔 달라고 했다.




그리고 결혼 후 첫 명절이며 우리나라 명절 중에서 최고인 설날이 다가왔다.

친정집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시댁만 가고 부산엔 오지 말라 하셨다. 그래도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양가를 다 가야 된다고 우겨보았지만 부산행 열차표 예매를 실패하고 그냥 집에서 쉴까 하는 욕심이 생겨 눈치를 보다가 부산은 연휴 끝나면 내려가기로 했다.

명절 때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차례 음식 만드는 것을 거들고 심부름을 하고 괜한 눈치가 보여 연휴라고 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놀러 가거나 해 본 적 없었다. 이때 정말 처음으로 연휴를 연휴답게 쉬었다.


명절날 효율적인 양가 방문이 시작되었다.

연휴를 잘 보냈더니 설날 연휴가 끝나자마자 임신을 했다. 만삭이 다 되었을 땐 추석이 돌아왔다.

시댁은 차례를 지내지 않았고 친정은 차례를 지냈고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몇 년 전부터 아빠가 장을 보고 근처 사는 언니와 오빠, 내가 음식을 준비했다. 임신 기간 동안 부산에 가서 볼록한 내 배를 보여주며 친정 밥도 얻어먹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서운했고 마음이 울적했다.

남편을 통해서 이번 추석 때 부산에 가겠다고 시댁은 연휴 전 주말에 들려서 인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시댁에서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몸조심해서 다녀오라며 다정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다음 해 설날에는 아이가 백일이 되지 않아서 친정은 가지 못하고 백일이 된 후에 시댁으로 갔다.

다음 명절은 친정으로 갔다.

이렇게 3년을 반복하니 명절에는 시댁 또는 친정 한 곳만 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어쩌다 번갈아 오고 가면서 나와 남편은 물론 시댁도 친정도 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오지 않는 명절에는 시어머니는 이모님들과 여행을 가시거나 본인의 친정에 가셨다.

친정집은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집안을 하고 있어서 할 일 많은 명절에 오는 것보다 한가한 주말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 오히려 양가 부모님들은 갑자기 명절에 가겠다고 하면 칼퇴를 하려고 했는데 퇴근 5분 전에 일을 주는 상사의 연락을 받는 것처럼 불편해하셨다.

우리는 서로의 편함에 익숙해지고 명절의 의무감은 서서히 옅어졌고 그렇게 서로에게 편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부산을 가야겠다 생각했다.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올해는 부산에 내려 간 적도 없었다. 부모님 얼굴을 못 본 지 1년이 넘었다.

먼저 시댁에 연락을 드려서 시작하는 연휴 첫날 뵈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얼굴 보자며 친정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친정에 전화했더니 이번에는 조리된 음식을 주문했다며 괜히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대신 차례 음식을 거들지 않아도 되니 추석 전날에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부산을 가겠다고 말하자마자 남편은 한 달이나 남은 추석 명절 도로 대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장시간 혼자 운전해야 되는 남편을 생각해서 서울-부산 중간쯤 하루 쉬고 가자고 말했다.

남편은 대뜸 '그 중간쯤에 캠핑장이 있을까' 하며 캠핑장을 찾아보고 있었다.



문경.

수없이 지나갔던 곳이지만 한 번도 내려서 머무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문경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은 시큰둥했다. 생소하기도 하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시간상으로 딱 좋은 거리라서 일단 문경을 중심으로 캠핑장을 찾았는데 괜찮아 보이는 캠핑장은 예약이 풀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문경은 계곡이 유명해서 여름과 초가을에는 인기가 많은 지역이었다.


블로그를 보다가 눈에 딱 꽂힌 계곡을 찾았다. 분명 적힌 캠핑장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홈페이지도 없었고 연락처 찾기도 힘들었다. 계속되는 검색으로 다른 방문 후기를 찾았고 시설이 많이 노후되었다는 댓글을 봤다.

고민이 되었다. 9월이지만 낮엔 덥고 계곡 물놀이를 하면 준이 샤워도 해야 되고 화장실이 없는 건 아니겠지.

남편은 혹시 전기가 없는 것 아니냐며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했다.

며칠을 끙끙 거리며 찾아보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계곡 하나만 믿고 예약하기로 했다.

찾아 찾아서 캠핑장 주인에게 연락해서 예약 가능 여부를 물었다.

예약하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100% 예약 가능이라 자신했는데 휴대폰 너머의 사장님은 오랫동안 예약을 확인하더니 예약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생소한 문경을 준이와 함께 갈만한 곳도 찾아보았다.

매번 경기도 인근 캠핑장만 다니다가 처음으로 타 지역으로 가보는 것이라 관광도 해보고 싶었다.

문경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지대 중 하나라서 석탄박물관이 있었다.

캠핑 2일 차에는 문경 에코 랄라, 석탄박물관을 가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에는 도로가 꽉 막힐 것 같아서 반차를 내고 금요일 오후에 바로 출발했다.

전날 밤에는 캠핑 짐을 모두 날라 차에다 실었고 아침에 남편이 준이를 데리고 나의 회사 앞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간단한 김밥과 빵을 사서 남편과 준이를 기다렸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막힘없이 수월하게 문경까지는 도착했다.

문경에서 캠핑장을 찾을 때 조금 헤매었다. 내비게이션에는 아래 굴다리로 내려가라고 하는데 굴다리 입구에는 차량 통행금지라고 되어 있고 캠핑장 간판조차 보이지 않았다. 캠핑장 사장님께 전화로 위치를 다시 확인해보니 우리가 지나쳐 왔다며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셨다. 겨우 도착한 캠핑장에는 우리뿐이었다. 사장님께 전화를 했더니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저녁에나 오신다고 원하는 자리에 피칭하라고 하셨다.


"오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울창한 숲 속에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음산하면서도 청명한 느낌이 그냥 설레게 했다.

남편은 나에게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냐고 신기하다고 했다.


어렵게 찾은 후기에 따르면 여름에는 계곡 쪽이 명당이긴 하나 시설이 낙후되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의 댓글에 의하면 입구 쪽에 여자 샤워실과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계곡 쪽 화장실과 샤워실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군대는 이것보다 더 심하다고 큰소리치던 남편은 샤워 대신 계곡에서 수영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새로 지어진 여자 샤워실과 화장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준이는 내가 데리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다니기로 했다.

계곡보다는 화장실 이용이 편한 입구 쪽에 있는 단독 사이트로 자리를 정했다.

사이트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단체 캠핑을 하기 좋은 자리가 많았다.

다니는 길이 평지가 아니다 보니 준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이 되긴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텐트를 피칭하고 우리 세 가족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계곡으로 갔다.

내가 사진으로 본 그 계곡이 맞길 바라며 준이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와!"

"우와!"

"아!"






계곡을 처음 마주한 우리 셋은 입이 쫙 벌어졌다.

사진빨이면 어쩌나 걱정했던 계곡은 실물로 보았을 때 더 멋있었다. 경관이라는 단어가 그냥 튀어나왔다.

반들반들하고 평평한 바위와 깨끗하게 맑은 물이 흐르며 작은 물고기 떼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수심은 깊지 않았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은 웅덩이는 물고기도 준이도 함께 앉아서 놀기 좋았다.

아래로 내려 가보니 물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천연 미끄럼틀과 그 끝자락엔 수심이 깊은 큰 웅덩이가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시원했고 기분이 상쾌해지고 맑아졌다.

이끼가 있는 곳은 미끄러워서 아쿠아 슈즈를 신은 준이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왔다 갔다 했다. 우리가 있던 위치는 수심이 깊지 않아 준이가 앉아도 서서 돌아다녀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공기를 마셨다.

이렇게 완벽한 날씨와 멋진 계곡 그리고 숲 속에 오롯이 우리 세명만 있다는 사실에 뭔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소름 끼치게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는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엄마! 마스크 왜 안 해도 되는 거야?"

"오늘은 우리밖에 없어서 마스크 안 해도 괜찮아."

"왜? 그럼 다른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땐 마스크 해야지."

"싫은데. 마스크 하는 거 너무 싫어!"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마스크를 옷을 입는 것처럼 의무감처럼 썼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준이는 세균이 없어져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되는 마스크 착용에 지쳐 있었다.

오늘 하루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 좋아했다.

나도 남편도 맑은 공기를 필터 없이 바로 들이마시니 좋았다.


물놀이도 실컷 했다.

아래로 내려가 바위 미끄럼틀도 타고 다이빙도 했다.

나와 남편은 아주 어릴 적 계곡 간 이야기를 하며 그때를 떠올렸다.



더운 여름엔 미니 캔맥주를 챙긴다. 미지근해지기 전에 차갑게 다 마실 수 있어서 좋다.




8월 같은 화창한 9월 날씨를 더 즐기기 위해서 야외에 테이블을 세팅하고 저녁밥 준비를 했다.

숲 속에서 사는 듯한 진짜 캠핑.


요즘은 캠핑장이 근교에 많이 생기다 보니 나무 몇 그루 정도로 그늘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주차장 라인처럼 서로 붙어 있는 사이트 간격으로 특히 여름에는 합숙훈련을 하러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가끔씩은 캠핑용품을 위한 캠핑을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널찍한 사이트 크기뿐만 아니라 오롯이 우리만 있는 단독 사이트와 울창한 숲 속.

작은 풀벌레 소리 하나까지 더해져 우리를 그냥 행복하게 했다.







준이는 고소한 삼겹살을 구워주고 우리는 뜨근한 어묵 국물과 문경에서 산 옥수수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니 금세 어둑해졌다. 볼일을 보고 캠핑장으로 온 사장님과 인사와 함께 예약 확인을 했고 사장님은 캠핑장 옆 도로변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셨다.


캠핑장이라 하기엔 자연 그대로의 숲이었다. 숲 속 풀벌레들이 돌아다녔다. 여치, 메뚜기도 만났다. 다행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나방이나 파리는 없었다. 곤충을 좋아하는 준이에게는 반가운 친구들의 방문이었다.

자칭 파블로인 아빠가 여치와 메뚜기를 잡아 채집통에 넣어두니 준이는 한참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옆에서 낮에 계곡 근처에서 주운 알밤에다 칼집을 냈다. 나중에 숯불에 넣어서 구워 먹을 생각을 하니 신났다. 어릴 적 시장 입구에서 할머니가 작은 화로에 구워서 파는 군밤이 정말 맛있었다. 그 군밤만큼 맛있길 바랬다.




계곡 바닥에서 주운 통통한 알밤



숲 속이라 좋은 점 한 가지는 해가 빨리 사라지고 밤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다.

어두워진 하늘을 보니 준이는 참았던 졸음이 쏟아져 하품을 했다.


"엄마, 언제 잘 꺼야?"

"엄마는 이것 정리하고 잘 건데 준이는?"

"엄마, 미안한데 나 먼저 자도되?"

"응? 졸려? 그럼 텐트 안에 들어가서 누워 있을래? 엄마도 바로 들어갈게."

"아빠 나 먼저 잔다!"


신기한 일이다.

어제까지도 졸고 있어도 절대 졸리지 않다고 우기던 준이가 졸리다며 스스로 텐트로 들어가 누웠다.

준이는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이제 저녁 7시인데.

깜짝 놀란 나와 남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1초 정지 화면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환호를 외쳤다.

자유시간이 이렇게 많이 주어질 줄은 몰라 살짝 당황하며 일단 불멍부터 하기로 했다.

칼집을 내두었던 알밤들을 철판 위에 올려서 노릇노릇 구웠다.

의자에 기대어 시원한 가을 밤바람을 느꼈다. 우리만 있는 이 숲 속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오후쯤부터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니 일부 사이트 몇 개만 빼고는 꽉 찼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여기 캠핑장이 가진 자연이 좋아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연휴 내내 우리뿐이었음 했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조용하게 편하게 지냈다.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고 캠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에코랄라에 갔다 왔다. 석탄박물관에서 탑승한 거미 열차가 재밌었는지 지금도 가끔씩 거미 열차 타러 가자고 말한다.

문경은 놀거리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에코 랄라, 석탄박물관, 자이언트 포레스트는 아이와 함께 꼭 가봐야 될 정도로 좋았다. 부산에 가면서 문경에 들려서 거미 열차를 꼭 다시 타기로 준이와 약속했다.

캠핑의 사전적 의미에 딱 맞는 캠핑을 문경에서 제대로 했다.

우린 2박 3일의 숲 속 캠핑을 알차게 보내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캠핑이란?

산과 들 또는 바다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함 또는 그런 생활.





문경 용추계곡 캠핑장

- 단독 사이트와 가족 사이트가 많고 사이트가 넓은 편이다.

- 입구에서 사이트까지 급경사라서 운전 주의가 필요하다.

- 내부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입구 쪽 2층 건물에 새로 지은 여자 단독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

- 계곡은 정말 경관이다.

- 캠핑장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

- 문경 중심가에서 10분 내외로 교통은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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