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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Feb 28. 2022

#8 가을 소풍은 갯벌 캠핑으로

태안 어은돌 오토캠핑장

이른 저녁, 우리처럼 가족 캠핑을 다니는 선배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몽산포해수욕장에서 캠핑 중이라며 멋진 야경과 맛조개가 가득 담겨 있는 양동이 사진을 보냈다.

밤바다 야경과 갯벌에서 잡은 맛조개의 사진을 보자마자 다음 주 캠핑은 무조건 서해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예약을 하려니 몽산포 쪽은 이미 예약이 끝나서 빈자리 잡기가 어려웠다. 차선책으로 잡은 태안 어은돌 해수욕장에는 그래도 자리가 제법 남아 있었다.

초록창 검색으로 알아보니 맛조개는 몽산포해수욕장에서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어떻게든 몽산포로 가보려 했지만 빈자리는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어은돌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하고 수산물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 먹기로 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준비를 한다고 서둘렀지만 어쩌다 보니 아침 9시가 지나서야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 한참을 서있는 동안 서해안으로 자주 여행 가시는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서해안 가려면 새벽 6시에는 출발해야 되는데 늦어도 많이 늦었다며 걱정하셨다.

금요일이니깐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어머니 말씀처럼 늦어도 많이 늦게 오후 3시가 넘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6시간을 차 안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앉아 있었던 준이가 대견스러웠다. 


"준, 이제 거의 다 왔어! 많이 힘들었지?"

"엉덩이가 쪼금 아팠지만... 괜찮아! 이제 바다에 가는 거야?"



돌이 지났을 때부터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카시트에 곧잘 앉아 있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을 해도 짜증 한번 없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도로에 보이는 자동차, 신호 등에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 하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눈으로 길을 익혔는지 한번 지나갔던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미술학원이 나오는데!"

"여기는 그때 갔었던 길이야"

"여기는 내가 가본 곳 같은데"


한 번은 준이가 생일날 갔었던 거제도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거제도는 너무 멀어서 아빠 차 타고 오래 앉아 있어야 해서 주말에 가는 건 좀 힘들어."

"난 괜찮은데! 아빠 차에 앉아서 구경하고 옥토넛도 보고 그러면 금방 도착해! 난 잘 앉아 있을 수 있어!"


엄마, 아빠가 트렁크에 짐을 싣고 뒷좌석에 올라타면 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준이는 오래 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재밌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준이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이 괜찮은 것이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니깐 더 재밌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참고 견디고 있었다. 창 밖을 보는 것도 도로 위 풍경을 보며 여행의 과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캠핑과 함께 5살인 준이에게 인내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누구의 탓도 아닌데 도로 위에 반나절이나 있었다고 투덜거리는 아빠에게 준이의 인내심을 조금 나눠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반나절을 도로에서 보낸 탓에 도착하자마자 저녁밥 준비를 해야 했고 오후 물때는 이미 놓쳐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린 2박 3일을 예약해서 다음날이 있다는 것이었다.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서둘러 피칭을 했다.

어은돌해수욕장에는 여러 개의 오토캠핑장이 구역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어은돌 오토캠핑장은 가운데 위치했고 샤워실과 화장실을 신축을 해서 시설이 깨끗했다. 남아 있는 사이트가 몇 개 없어 어쩔 수 없이 바다에서 제일 먼 끝쪽에 있는 사이트로 예약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위치도 넓은 간격과 마음에 들었다. 바닷가 쪽으로 사람들이 오고 가다 보니 우리 사이트 쪽은 나름 조용했고 다른 캠퍼들이 없어서 공간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불편할까 봐 걱정했던 화장실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고 사이트 가까운 곳에도 개수대가 있어서 편했다. 건너편 펜션에서 운영하는 마트가 코앞에 있어서 이소가스, 부탄가스, 생수 사러 왔다 갔다 하기도 좋았다.

그리고 사이트 뒤쪽에는 모래가 있어서 피칭을 하는 동안 준이는 모래놀이를 하고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그 모래가 바람이 불 때면 장비며 가방에 다 쓰며 들어와서 철수할 때 모래 털어내느라 조금 귀찮긴 했다.

서둘러 장비들을 세팅하고 간식과 함께 저녁밥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삼겹살을 굽고 선선한 가을에 빠질 수 없는 해물 부추전과 막걸리도 곁들였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준이와 함께 야경을 보러 바닷가 앞으로 산책을 갔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했고 사람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웃음소리가 아주 잠깐 낯설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청춘스러운 분위기가 참 오랜만이구나 생각했다.

수면이 가득 차오른 어은돌 해수욕장의 밤도 참 예뻤다. 준이에게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많은 바닷물이 다 사라져서 게, 조개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준이에게는 두 번째 갯벌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심심하다고 외치는 준이는 직접 챙겨 온 장난감을 찾았다.

작은 태권도 가방은 도라에몽 요술주머니처럼 헬로카봇부터 색연필까지 다양한 장난감들이 쏟아져 나왔다.


"준, 아침밥은 뭘 먹고 싶어?"

"난 고기랑 밥이랑! 엄마가 아침밥 만드는 동안 나도 맛있는 요리 만들 거야!"


플레이 도우를 담은 비닐봉지를 아래로 쏟아내고는 진지한 얼굴로 도우 뚜껑을 열었다.

요리 대결이라도 하듯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조물조물 뭔가를 만들었다. 엄마보다 빨리 완성해서 1등이라고 외치고 싶은가 보다.





준이가 먼저 플레이 도우로 만든 요리를 끝내고 지금 몇 시인지 시간을 물어보았다.

아마도 간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바닷물이 빠질 것이라고 말했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아침밥은 남편이 좋아하는 베이글을 구워서 크림치즈를 발라서 커피와 함께 먹었고 준이는 불고기를 구워서 덮밥을 해서 주었다. 갯벌을 빨리 가고 싶어서 시간을 계속 확인하는 준이는 아침밥을 후딱 먹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간조 시간이 다 되어서 갯벌 방수복을 입혔다. 

지난번 갯벌 체험 때는 장화만 챙겨서 갔었는데 여기저기 진흙이 다 튀었고 고무장화가 갯벌에 푹 빠져서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장화가 벗겨져서 걷기 불편해했고 진흙이 자꾸 묻고 젖으니 아이도 금방 추워해서 이번에는 고무장화 일체형 방수복을 준비했는데 준이가 편하게 돌아다녔고 나도 갯벌에 박힌 장화 빼주느라 힘쓰지 않아도 되었다. 갯벌 체험에는 장비빨이 필수이다.





갯벌 체험이 익숙해진 준이는 능숙하게 자갈밭을 돌아다니는 게를 잡아서 채집통에 넣었다.

작은 조개들과 소라게부터 이름 모를 작은 게들이 무수히 많았다. 바닥에 게들이 많아서 혼자서도 쉽게 잡을 수 있어서 준이가 재밌어했다. 갯벌을 어리 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남편은 작은 게들 밖에 없다며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까지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큰 게를 잡아도 먹지 않을 거니 그냥 같이 있자고 말했지만 남편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 까지만 갔다가 오겠다고 걱정을 끼치는 행동을 하면서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간조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핸드폰 알람을 설정하고 보냈다. 갯벌은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알람 울리면 무조건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도 모험을 좋아하고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겼던 청춘을 보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 보니 모험보다는 안전이 중요했고 불필요한 욕심보다는 필요한 적당함이 좋았다.

소중한 나의 가족이 생기니 하고 싶은 것보다 지키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고 걱정이 많아졌다. 내 나이와 함께 걱정 인형의 수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래서 남편의 아이 같은 모습에 잔소리를 자꾸 하게 된다.






준이는 채집통 가득 조개와 게를 잡았고 남편은 제법 큰 게도 잡았고 가리비와 미꾸라지 같은 것을 잡아 왔다. 갯벌에서 잡은 조개와 게를 다시 바다로 돌려 보려고 했지만 준이가 하루만 같이 있다고 돌려보자고 해서 양동이에 바닷물을 담아서 사이트로 돌아왔다.

준이는 움직이는 조개 모습이 신기했고 손바닥에 게를 올려 두고 관찰하기도 했다.

결국 소라게 한 마리만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해서 채집통 가득 바닷물을 담아 소라게 데리고 집까지 갔는데 그 소라게가 무탈하게 잘 살아서 2주 뒤에 다시 어은돌 해수욕장을 갔을 때 바다에 풀어주었다.





어은돌해수욕장에서 5분 거리에 모항항 수산물시장에 가서 새우와 가리비 사서 구워서 먹었다. 새우 철이라서 생새우를 추천받아서 사 와서 구워 먹고 튀겨 먹었다. 한 입 먹자마자 감탄이 절러 나왔다. 살이 통통하고 너무 맛있었다.

함께 산 가리비는 아무 양념 없이 숯불에 구워서 바로 먹었는데 입안 가득 바다향이 터졌다. 통통한 살과 육즙에 입안에 터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라면서 먹은 조개구이 중에서 최고 으뜸이었다.

조개류를 싫어하는 남편에게 억지로 매너적으로 한 입 먹였는데 이런 가리비는 몇 개 더 먹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준이가 조개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날만큼은 편식을 하는 두 남자가 고마웠다.

처음으로 준이에게 딱 한 번만 물어보고 더 이상 가리비를 권하지 않았다. 나 혼자 이 맛있는 가리비를 독식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했다. 이 날 너무 맛있게 먹은 내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이 날의 나를 재연하는데 정말 촐싹스러워서 두 눈으로는 절대 볼 수가 없다.

생새우는 깨끗하게 손질해서 반은 굽고 반은 튀김옷을 입혀서 튀겼다. 속초 대포항 새우튀김보다 열 배 백만 배는 더 맛있었다. 이 날 먹은 새우와 가리비가 계속 생각이 나서 우리는 2주 뒤에 어은돌해수욕장으로 또 캠핑을 갔다.





밤이 무르익었다.

갯벌 체험에 온 힘을 다 쏟은 준이는 일찍 잠이 들었고 나와 남편은 밤 가을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했다.

바다 쪽 사이트에서는 아직 시끌시끌했다. 폭죽 터지는 소리와 빛이 번쩍 거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딱 적당한 거리에서 들리는 즐거운 소리였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잔잔하게 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도 기분 좋은 밤이었다.

준이는 잠드는 순간까지도 갯벌이 너무 재밌었다고 중얼거렸고 원했던 맛조개는 구경 못했지만 대신 가리비가 너무 맛있었다. 오늘 하루 우리가 행복하기엔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느긋하게 철수를 했다. 서해안까지 왔는데 바로 집으로 가기엔 아쉬웠다.

그리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전날 밤 찾아 둔 안면도 쥬라기 박물관에 들렸다가 점심밥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공룡박물관에 간다고 하니 준이는 '너무 신난다' 라며 소리쳤다.


안면도 쥬라기 박물관은 박물관, 미디어관, 천문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우리는 박물관+미디어관만 입장했다. 미디어관은 4D 체험관이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시설이나 콘텐츠적으로 부실했고 실내 전시와 야외 놀이터만으로도 충분했다. 공룡이 많아서 신이 난 준이는 열심히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추워서 야외 놀이터에서 많이 놀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준이는 공룡 전망대와 미끄럼틀이 재밌어서 여러 번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반복했다.


점심도 든든하게 먹은 준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캠핑도 하고 갯벌 체험도 하고 소라게도 잡고 공룡도 보러 오니 보람을 꽉꽉 채운 캠핑이었다.

어은돌 캠핑장을 2번을 갔다 왔는데도 준이는 갯벌 캠핑장에 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매년 갯벌 철이 되면 어은돌 캠핑장을 찾게 될 것 같다.






- 어은돌해수욕장을 앞으로 두고 각 다른 오토캠핑장들이 있는데 어은돌 오토캠핑장이 가운데 위치해 있다.

- A존은 바다의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뷰 맛집이지만 시끄러운 소리와 도로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단점이 있다. 

- 큰 나무들과 기울어져 있는 나무들이 있어서 반듯하게 피칭이 안 되는 곳도 있다.

- 우리는 2번의 방문 모두 F존 맨 끝 줄에 예약했다.

- 개수대와 화장실, 샤워실은 신축으로 모두 깨끗했다.

-  어은돌해수욕장은 조개보다는 게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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