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나만의 점심시간

by 레이마망

아침 등원 전쟁을 끝내고 가까스로 정각 출근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가출한 정신력과 체력을 보충한다. 오전 업무를 하면서 나는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내 마음대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를 위해 매일 1시간을 전부 쓸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즐겁다.


집에서는 아이를 위한 음식으로 준비하고 밖에서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주문해서 먹는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아이가 잘 먹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배부른 것보다 아이가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볼 때가 더 행복하다 느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것도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주말에 무얼 할지 정하는 것도 일상 대부분의 선택권은 나에게 주어지지만 정작 날 위해 사용한 적은 없다.

나보다 남편, 그 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더 먼저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그저 나는 그냥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항상 가족이 맨 앞줄이다. 그러는 것이 내 마음 또한 편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찰나의 순간에는 내 마음이 텅 비어 있음을 느꼈다.


모두가 다 잠든 늦은 밤, 홀로 거실에서 맥주 한 모금 마시며 휴대폰 사진 속 아이의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다가 뭔가 모를 마음의 허기를 느꼈다.

지난 1년간 나의 얼굴 사진은 없었다. 이젠 내 얼굴을 이유 없이 찍는 것이 어색해졌다.

그렇게 셀카를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카페에 앉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 제대로 마신 기억이 없었다.

1년 내내 동화책을 천 번 이상은 읽은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 한 권을 읽어 보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남편 취향의 맥주를 마시며 안주 삼아 먹을 내 취향의 과자 조차도 집에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갑자기 도둑이 와서 내 것을 훔쳐 간 것도 아닌데, 그냥 갑자기 화가 났다.

휴대폰 카메라로 어색한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푸석해진 얼굴과 머리카락은 언제 이렇게 많이 길었는지 부시시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이런 내가 참 안쓰러웠고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어쩌다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려나버린 나를 나는 평일 점심시간에 챙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소소한 사치를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은 무조건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내야 된다는 생각을 털어버리고 육아에서 벗어난 작은 자유 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내며 즐기기로 했다.


60분 또는 90분의 점심시간 동안 맛있는 밥을 먹는 것 외에도 생각보다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바로 준이를 데리러 가야 했고 주말조차 제대로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어서 가지 못했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기로 했다.

직업병인 거북목과 손떨림을 치료하기 위해 근무하는 회사 근처에 있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기도 하고 지저분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러 헤어숍에 갈 수도 있었다. 유전적 고질병인 기미, 주근깨를 없애기 위해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치료도 받고 덤으로 오는 피부 마사지를 받으며 잠깐이지만 꿀잠을 자고 기분이 좋아졌다.

근처 서점에 가서 베스트 셀러에 올라온 책들을 읽으며 마음의 배를 채우기도 했다. 결국 계산대에 올리는 것은 동화책이지만.

가끔은 친구들이 나의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까지 와줘서 함께 밥을 먹으며 그 동안 밀린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과 스케줄을 상의하고 주말 외출로 준이에게 미안해 하지 않고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누구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나만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한 점심 메뉴를 선택하고 내가 배부를 만큼 먹고 내가 앉아 있고 싶은 만큼 머무르며 평일 점심시간을 사치스럽게 즐기고 있다.

매일 1시간씩, 1주일에 5시간을 나는 충분히 누리기로 했다.

엄마이기 전에 나는 나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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