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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Dec 10. 2021

농사꾼의 '전지'훈련

배움에는 과연 끝이 있는가?


지난 일요일. 남편이 캐리어 하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다름 아닌 출장. 농부가 웬 출장이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나서는 길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과수원에는 사과가 가득이다. 사과 과수원을 한다고 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사과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사실 주변 사과 농사 지으시는 분들만 해도 고구마나 복숭아, 체리 등 사과 말고 다른 작물이 하나쯤은 있다. 허나 우리 과수원엔 사과뿐. 엄밀히 말하면 두 종류의 사과(홍로, 부사)를 키우고 있으니 한 가지는 아닌 건가?


시부모님께 다른 걸 하실 생각이 없으신지 여쭤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사과 하나만으로도 바쁜데, 다른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벌써 농사 15년 차 이신데도 사과 농사는 신경 쓸 것이 많고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다른 농사를 지으려 생각해보신 적은 있다. 배나 사과나무에 생기는 과수화상병 때문에 농사를 접는 주변분들을 보며 '사과 말고 다른 작물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생각뿐. 결국 내년도 사과 가득 과수원 확정이다. 심지어 밭 두 곳을 갱신하는 중. 어쩔 수 없이 남편도 사과로 먹고사는 농부가 다시 되었다.



시부모님과 우리집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과나무. 노지에서 키우는 작물이라 손이 많이 간다. 요즘은 농사도 기계화가 되어 농사짓기가 편하다고는 하지만, 기계를 밭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밭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느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줄대로 심지 않으면 기계가 들어가기 힘들고, 가지가 너무 무성하면 좋은 약과 비료를 주어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그래서 과수원이 큰 곳은 과원을 잘 가꾼 곳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가 할 일도 사람이 해야 하니까.


이렇게 정리가 잘 된 과원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노력과 공부가 필요한데, 겨울철에 할 수 있는 일은 전지작업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가지치기. 가지가 제멋대로 뻗쳐나가면 기계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가지를 쳐내면 나무의 기가 세져서 열매는 잘 맺지 않고 수세가 세진다. 이른바 적절한 가지치기가 필요한데 이것이야 말로 정말 기술이다. 사과꽃을 따고,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5분만 배워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지를 쳐내는 전지작업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 이상 쉽게 도전하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한 해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전지라고들 말하실까.


그러다 보니 일꾼을 쓰기도 쉽지 않다. 시골에 들어오는 일꾼은 대부분 외국인인데, 일단 말이 잘 통하지 않고, 한 과수원에 고정적인 인원이 오는 게 아니다 보니 매번 가르쳐야 한다. 또한 매번 가르쳐도 그들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엉뚱한 가지를 -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잘라내기도 한다. 사실 나무 전지는 과수원 주인이 하는 게 제일 속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겨울에도 쉴 틈 없이 가위와 톱을 들고 과수원으로 출근해야 한다.



귀농 초, 정말 행운으로 농업마이스터대학에 들어가 사과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실습한 남편. 그럼에도 여전히 유튜브를 보면서, 아버님과 그림을 그리며 토론을 하면서 어떤 가지를 잘라내는 게, 어떤 수형을 유지하는 게 우리 농장에 최선인지 항상 공부한다. 그런 공부의 연장선으로 올해 겨울은 평창으로 떠났다. 마이스터대학을 통해 알게 된 교수님 밑에서 전지를 배우기 위해서다.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로 먹고사는 농부에게 가지치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보니 아무 가지나 자를 수도 없고, 또한 공부해서 잘 잘랐다 하더라도 이를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교수님과 여러 밭을 돌아다니며 일하면 가지치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은 물론, 실습도 할 수 있고 피드백도 곧장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밭을 다니며 우리 과수원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점은 열흘간이나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 그동안 아이 둘을 보는 건 내 몫.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부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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