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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Nov 23. 2020

그건 너의 꿈이지 나의 꿈이 아니야

일 안 하는 아내 그리고 며느리


'농사'라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아니, 정말 힘든 일이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과 같이 농사를 지으며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는다. 60대 어른들과 30대는 생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같아도 이상하다.)

우리 시부모님 뿐 아니라 대부분 주변의 농사짓는 어르신들은 부지런하시다. 새벽 5시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사방이 캄캄한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하신다. 그리고 저녁 8시에 집에 돌아오신다.


공휴일? 그런 건 없다. 공휴일은 사람에게나 있는 거지 농작물에게는 의미가 없다. 공휴일에도 과수원의 사과나무는 계속 일을 한다. 덩달아 그녀석을 관리하는 농부도 계속 일을 한다.

비 오는 날에 쉬면 되지 않냐고? 모르는 소리. 비가 오는 날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어머님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밀린 살림을 하시고, 아버님은 창고 정리를 하신다. 그러나 이것도 비가 많이 올 때가 하는 일이다. 비가 그냥저냥 오는 날이면 우비를 입고 일을 나가신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려니 남편의 몸이 견디지 못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싶은데, 부모님은 일하시고 자기만 놀 수는 없다. 새벽 5시는 아니더라도 새벽 6시에는 밭에 나가야 눈치가 안 보인다. 어른의 눈으로는 못마땅하다. 농부의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싸우는 날도 있다.



그럼 나는 뭐 하느냐고? 집에서 애 본다. 종종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신다. '일할래? 애 볼래? 하면 다 일한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 돌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집에서 어려운 일을 하고 있건만, 안절부절못하는 날들이 있다. 일손이 부족할 때다.


사과꽃을 딸 때, 사과를 속아줄 때, 사과를 수확할 때. 이때만큼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시부모님도 남편도 1분의 시간이 아까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실 때가 많다. 일꾼을 구해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텃새에 밀려 다른 과수원에 일꾼을 빼앗기기 일쑤다. 화가 나지만 다른 과수원에 화를 낼 수는 없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고, 화를 낸다고 해서 빼앗긴 일꾼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저 감정만 상할 뿐이다. 다른 과수원이 빨리 일을 끝내 우리집까지 일꾼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도 있지만 일꾼으로 쓰기에는 힘들다. 일단 말이 안 통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매번 일을 가르쳐야 한다. 항상 같은 사람이 오는 게 아니라서 올 때마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한국 일꾼은 베테랑이다. 종종 과수원 주인보다 일을 잘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시간의 낭비가 없다. 단, 일당이 비싸다. 그리고 요구사항이 많다.

그런데 올해는 한국 일꾼을 커녕 외국인 노동자마저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코로나가 과수원의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그 누가 예상했으랴.



이렇게 바쁘지만 난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왜냐고?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자. 삼성전자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고 하자. 일이 엄청 많아 매일 야근을 한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아내에게 회사에 와서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일이 많든 적든 남편의 일이다. 단지 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주고 기다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건넬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수원의 일이 바빠도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내 일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아이를 잠깐 맡기는 시간엔 내 꿈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는 시간이다. 남편의 꿈이 귀농이었듯, 나에게도 꿈이 있다. 나의 꿈을 포기하고 남편의 꿈을 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부부지만 꿈은 각자의 것이니 말이다.

알아서 과수원 일을 도와주기 원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농사는 너의 꿈이지 나의 꿈은 아니야. 정말 바쁠 때 나에게 도와달라고 해. 그때는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를 바라지는 마.'


며칠이 지나, 남편이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아침에 과수원으로 나가 일을 했다. 집 안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산공기를 마시며 일을 해서인지 기분이 상쾌하다. '아버님, 가끔 이렇게 나와서 일하면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다는 표현과 가끔 일하고 싶다는 표현이 뒤섞여 나왔다.


나는 나쁜 아내, 못난 며느리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꿈을 향해 가려한다. 농부의 아내, 농사꾼의 며느리는 나의 일부이다. 온전히 나를 알고, 나를 완성해갈 때 나의 일부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사일을 안 하는 농사꾼 아내의 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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