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온기가 향하는 곳

[영화] 일로 일로 by 안소니 첸 감독, 2013 & 2025

by 서희복

털썩 떨어져 사라지는 생명을 바라보며 바래지는 눈이 떨리면 잠시 숨을 멈추고 기도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마감해야 하는 절망이 오는 길은 의외로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더 가슴을 저민다.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차가운 고독을 견디다가, 가족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책임으로, 스스로 쓸모가 없어졌다는 허망함으로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부조리를 견딜 수 없어 그렇게 중력의 처절한 충돌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나의 현재 중력과 그들이 떠안고 가버린 그 무게가 엇비슷해지는 날이면 나 또한 그렇게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내내 꼭 쥔 주먹을 펴게 되는 순간이 많아 지기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긴 경제 공황의 터널 속에 머무는 우울한 어둠이 조금씩 삶으로 파고들 때마다 스스로 외면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들은 현명했다.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이 뒤엎은 순간들에 솔직했고, 같이 걷는 상대를 향해 마음을 열고 눈물을 같이 닦았다.


순간적인 분노와 절망에 자포자기했더라면 가족들의 상처를 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끌어안고 가는 그들 앞에서 나는 비로소 아프도록 꼭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풀 수 있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지금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괜찮다는 말, 그 말 한마디에 한 대 얻어맞은 듯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경제적인 위기가 가족이 이뤄야 할 진피층까지 닿으며 아프지만 그렇게 견디는 것인가 보다. 커다란 울음으로 시작하는 기쁜 탄생은 맞이하는 웃음으로 그렇게 새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맞벌이로 엄마와 아빠가 부재중*인 문제아 외동아들 '자러'와 필리핀**에서 온 가정부 '테레사'의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있었던 작지만 기쁜 여러 개의 흔적들이 그들의 삶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아이를 향한 마음이 잔잔하게 남았다.


온기가 외로운 부재를 채우는 '일로 일로'의 중의적인 의미가 인상적이다.



*: 중국어, 일로 일로(鴦綾不在家) 의미 - 엄마와 아빠는 부재중

**: 필리핀 일로 일로(Ilo Ilo) 지역 - 가정부가 떠나온 곳

▣ 사진: IMDB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