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갈증
흥분은 그렇게 시작한다. 이상한 습관이 있다는 걸 안게 된 후 의식하며 더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사랑하게 된다는 건 한번 더 조금 더 길게 그리고 더 깊게 그것을 또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잠에서 깨면 무의식으로 스며들어가는 곳에서 진한 커피를 만든다. 온몸의 감각세포를 깨우는 그 향은 아직 늘어져 이곳저곳 매달려 있는 잠을 밀어낸다. 은은한 먼 종소리처럼 기쁜 시작이다.
하루의 물리적 루틴을 시작하며 마치 관심 없는 듯 커피를 홀짝이면서 두 눈을 몰아 남은 커피를 가늠한다. 목으로 넘어가는 커피의 희열을 느끼면서도 계속 줄어들기만 하는 커피를 보는 게 안타깝다.
입술에 닿으며 눈을 감다가도 머물지 않는 커피에 더 절절한 마음이다. 컵 바닥이 보이면 들어간 부피만큼 늘어난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보다 희멀건 수채화 같이 말라가는 남음의 부재가 슬프다.
후회도 미련도 거기에 머문다. 남은 것의 반만 마실 거야. 다시 그 반만 홀짝일 테야. 다시 그 반의 반만 허락하면서 더 이상 꿈쩍하지 않는 얼룩에 혀를 내민다. 닿지 않는 더 흐려진 액체의 얼룩들...
그렇게 얼룩을 안고 갈증을 바라보며 인정하며 가야만 하는 하루의 시작이다. 매일 그러면서도 항상 체념하고 새롭다 일상의 시작을 맞이한다. 습관성 충족은 결핍을 잊게 하고 예민한 감각을 닫히게 하여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갈증과 결핍으로 시작되는 채우고 싶은 시간들, 그 흥분을 행복으로 바꾸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흥분과 행복과 희복은 어쩐지 세 쌍둥이 같은 모습이다. 태어난 곳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자기다움을 향해 여유 있게 걸어가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보고 있어도 자꾸 더 보고 싶고 보고 있을 시간이 줄어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시간들, 존재와 욕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가슴 한 곳에 살아남거나 육신 한편에 상흔이 될 수도 있을 운명에 있는 힘을 다한다.
더 할 수 없을 때까지의 최선이 시작의 흥분을 지속하게 한다. 커피 안의 애절함은 사람을 향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 온기를 오래 품을 수 있는 도자기 머그 안에 여전히 남은 커피의 흔적들은 내 사람이 존재하는 이 세상의 갈증과 함께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