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초고 3263
온기 없는 어두운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있었어. 그것도 금요일 밤, 모처럼 약속도 없는. 선물로 받은 술잔 중 하나에 눈독을 들여.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위스키를 따를까 기다란 꽃무늬 잔에 고량주를 채울까 그냥 자주 마시는 14도의 술을 위한 납작한 도자기 잔을 꺼낼까 마구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야.
역시 혼술이지.
다음 날 백 미터쯤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천장을 마주하며 퀭한 눈에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났다. 도형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자마자 토요일이라는 것이 생각나 다행이라고 느꼈다.
술잔을 고르다가 정신을 잃은 듯 그 저녁, 또는 밤이 기억나지 않았다. 벽에 기대고 테이블 모서리를 잡으며 주방으로 갔더니 술잔이 줄줄이 서너 가지로 설거지 통에 들어 있었다. 술을 몇 가지나 마셨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리코타 치즈를 올려 샐러드도 만들었었나 보다. 프랑크 소시지에 칼집을 넣어 살짝 튀겨 먹었는지 물 위에 옅은 기름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달걀찜까지?
위스키는 스트레이트였을 거고 고량주는 튀긴 소시지에 샐러드는 저녁으로 먹은 것 같았다. 산사춘에는 역시 달걀찜이지. 커다란 도자기 접시가 두어 개, 작은 드레싱 종지까지 어떻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그릇들을 꺼내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달랑 한 스푼쯤의 음식을 만들어 과장된 커다란 접시와 보울에 담아 먹은 흔적이 그릇들에 스치듯 남아 있었다. 설거지 그릇 위로 그만큼 더 쌓여 슬쩍슬쩍 얼룩을 흘리는 그릇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도졌구나. 때가 된 거야.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을 애써 용서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괜찮다니깐!
몇 달에 한 번쯤이면 나쁜 건 아니잖아. 하지만 이런 일이 거의 이십여 년간 규칙처럼 삶을 뒤집고 있다는 건 자랑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 왜 이러지?
도형은 대기업 부사장으로 남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승진하며, 가족의 축하와 동료의 시샘을 안고 능력을 인정받아 수직 사다리를 타고 있는 중이다. 커다란 자부심으로 어떤 때는 행복에 겨워 친구들을 초대해 와인 파티를 열어가여 한껏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무서운 공포가 가슴을 조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여러 가지 술을 한 번에 마시며 단박에 두려움을 해치우려 기를 쓰고 있었다. 혼자의 생활은 그녀가 자청한 것이었다.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남편과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아이를 함께 영국으로 보내고 자유로운 싱글 생활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박사를 곧 마친다며 흥분한 남편의 전화에 펄쩍펄쩍 뛰며 함께 기뻐한 게 얼마 전인데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사업에 성공한 남편이 가진 도형이 모르는 재산이 꽤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결혼 후에도 서로 독립채산제로 경제적 간섭은 없으니 그 또한 자유였다. 강남 최고의 에스테틱샵에서 피부관리를 받고 있었고 다니고 있는 피트니스 센터도 서울에서 연회비가 최고인 곳이었다.
그러다 꼭 사달이 났다. 대체 혼자 얼마나 마셨는지 산더미로 쌓인 그릇들 앞에서 우두커니 더러운 토사물 같은 불투명한 개숫물을 그냥 바라보고 서 있었다.
"고기능 우울증으로 보입니다."
몇 가지 자기 보고식 검사지를 들이대며 지금 도형의 기분과 상황에 체크하라는 거였다. 문항들을 훑어보니 성의 없이 답하면 다른 정체성이 나올 것 같았다. 스스로 찾아온 곳이니 최대한 성실하게 속 깊은 체크를 했다. 일주일 후 찾아간 신경정신과 의사는 담담하게 한 문장으로 그렇게 진단을 내렸다. 그리곤 덧붙였다.
"우울증은 그저 기분이 아닙니다. 더러운 그릇이 산더미로 쌓였다고 해서 환자분이 게으르다는 증거가 아니에요. 그건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죠."
도형의 사회적 경제적 기능이 너무 훌륭하고 찬란해서 우러러지고 받들어지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서서히 고꾸라지고 있었을 거라 했다. 잠시 고꾸라지는 것도 기분전환 같은 거 아닌가.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예상 못한 병명을 받고 나니 살아냈던 속도와 도형 자신이 겪어 낼 수 있는 삶의 한계치가 제대로 맞아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삶의 부피가 아주 작은 균열에 바람이 빠져나가듯 헐렁해지고, 일을 하면서는 흥분도를 높이며 날뛰는 좀비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던 것 같았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혹여 가장 반사되는 빛이 많은 버전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으로 살아온 건가.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꼬리표가 도형을 더 회색으로 만들고 있었다. 식욕보다는 술욕으로 가끔 폭주하던 날들, 모임이나 파티에 나가면 집중되는 시선을 즐기며 아래위 치아가 모두 보이도록 빛나게 웃던 웃음들, 몸짓, 그리고 언제나 잘하고 있다는 손짓과 눈빛이 도형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걸까.
음식으로 우울을 메꾸고 술로 우울을 잊고 찬란한 과장으로 우울을 밟아오던 날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뜨거운 연애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열기를 결혼까지 가져와 여전히 친밀하고 따뜻하다 믿고 싶지만 김 빠진 풍선처럼 남편과 나란히 누우면 더블 침대가 트윈으로 나뉘었으면 하는 상상을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보이는 성공의 겉모습 뒤 막다른 골목 같은 단절,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면서도 어느 한 곳은 꼭 부족한 느낌,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는 생각들, 그런 저런 무의식 속의 도형이 까발려지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 앞에 앉은 푹 꺼진 소파 안의 도형은, 보이는 의식적 소망과 감추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의 큰 괴리 안에서 진짜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
어떤 욕구가 생길 때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라 한다. 인정하라 한다, '내가 정말 힘들구나, 아프구나.' 우울증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한다.
아니! 난 부끄럽다고! 도형이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아마도 그녀 자신에게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받아온 인정과 기대는 어쩌냐고. 어떻게 하냐고...
상담 회기가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극복하려고 불끈 노력하는 건 패자의 몸짓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되뇐다. 그런 실천을 스케쥴러에 기록하며 루틴이 쌓일수록 도형 자신다움을 찾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는다.
가장 중요한 건 도형 그녀 자신이니 내면을 들여다보고 도와달라 손 내밀며 살라고 한다.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거, 온 마음 다해 자신을 바라보라고 한다.
여전히 어제도 술잔들을 나란히 두고 몇 개를 골랐더랬다. 따뜻한 물을 틀어 커다란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두 손을 흠뻑 진심으로 감싸주는 수돗물의 고마운 온기, 오늘 싱크대에는 커다란 접시 하나만 도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