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對話』(p.163)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p.163

수니가 걸어가는 죽음이라는 방향으로 서서 화자인 '나'는 아우렐리우스가 정의한 '죽음'을 바라본다. 감각이 쉬는 상태, 충동의 실이 끊어진 휴식의 상태. 수니와 '나'는 모두 죽음에 대한 집착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어쩐지 수니는 '나'의 긴 삶을 예견한다. 그래야 수니 자신의 죽음이 이루어질 것처럼.


회화繪畵에 깃든 광기狂氣, 존재론적으로 본다면 가라앉은 자신의 최선의 순간이 광기로 나타날 때의 희열을 스스로도 가치 있게 여길 때 비로소 물리적 세상에서의 사라짐에 초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광기를 의심하고 수니는 이미 그 안에서 자신을 기쁘게 정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뒤집어 남아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수니가 남긴 이마의 키스는 그녀를 만났던 순간들을 특별하게 기억나게 했을까.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의 옷에 붙은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순간 시간은 다른 색깔로 다가선다. 그렇게 어색하게 지나친 후 꽤 오래 지나 다시 만난다면 그건 어떻게든 얽히게 될 운명이다.


민방위 훈련, 개미, 이름 놀이, 미시마 유끼꼬의 소설, 공유하는 언어로 알아보는 그 둘의 첫 마주침, 수니와 그녀가 사랑했던 석우의 'Who?' 'It's me.'를 지나 죽음을 향해 동행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슬픔이 묻어난다. 게 잠드는 사람들의 예민함, 아름답게 남기고 싶은 해안가의 풍경들이 조금씩 그들의 시간을 휘저어 휘발시킨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듯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모으는 '나'는 수니의 예언을 비웃을 수 없다. 넌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지. 의사가 되어 행복하겠지. 스물한 살의 남자와 스물여섯 살의 여자의 가슴은 죽음이라는 그 초월의 세계를 언어로 나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두려움으로 그녀의 심장은 초연함으로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다.


그래야 하는 거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건 가슴에 남은 모든 기억과 기록과 자기애의 이기심을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거다. 두려움은 집착을 낳고 애써 무시하고만 싶다. 안될 걸 알면서도 보이는 것들이 다짐을 더 다지게 한다고 착각한다.


두려움에는 진한 삶의 애착이 매달려 있다. 잘 살지 못할까 봐 혹은 잘 죽지 못할까 봐.


피카소의 횡설수설이 아니더라도 그 광기狂氣의 자유를 위해 손을 펼 때에야 이 세상을 닫는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걸 그들과 나는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