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아나 팔라치,『태어나지않은 아기...』(p.115)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p. 115


요즘에도 헐벗은 듯한 조용한 시골에서 다방이라는 바랜 간판을 마주친다. 도시의 화려한 카페가 부지런히 토해내는 즉석구이 같은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농익은 시간들이 잠자는 곳, 수니는 거기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정확하게 내비치지 않아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커피를 타고 건네고 사람들을 본다.


사랑했던 과거로부터 문득 연결된 시아버지로부터 다시 석우의 모습을 아프게 되새긴다. 어떻게든 살게 하려는 마주 본 사람들의 못다 한 이야기를 묻는다. 사람들 속에서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에 맞는 이야기들을 쌓아가며 세상 사는 그 세밀하고 묵직한 메시지들이 가슴에 남는다.


다방 주인, 차 선생, 중학교 영어 선생, 낳은 아이와 강제로 떨어져야만 하는, 마셔도 마셔도 술이 취하지 않는, 가슴이 얼마큼 뚫려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 그녀의 억눌린 슬픔, 그것들이 그 다방에 있다.


언젠가 큰 세상을 향해 날 거라는 주방의 젊은 미스터 홍, 비애 담은 매일매일 자조에는 곁에 서성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항상 투덜거리면서도 옆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 무뚝뚝함 속의 다정함이 따뜻하다.


김시우, 학교 선생, 차 선생과 학생들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전 (前) 시인이라 소개한, 세상에 대한 철학과 갈증으로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중심 주제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밥벌이가 되면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인 선생, 자신도 하고 있는 그 선생의 상은 그 시대에도 순수하지 않았나 보다. 가르치는 게 좋아 밥벌이가 되는 것과 생계를 위해 어쩌다 불운으로 하게 되는 선생질에 대한 울분에 나도 같이 주먹을 쥐었다.


시인이 없는 시대라 했다. 시 (詩)는 넘치고 시인은 없다는 그 말은 요즘 내가 화장실에 박힐 때마다 읽고 있는 한 시집*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노(老) 시인이 젊은 시인들에게 하는 지적과 다르지 않았다. '요즘 우리의 시가 한없이 늘어지고 길어지고 요설로 흐른다'는.


그 시집을 읽으며 노(老) 시인에게 꼰대향을 느끼고 다른 이가 쓴 서문에서 나는 시대착오적인 거리를 느낀다. 다른 쪽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추천사는 비린내 난다.


시우의 근본적인 슬픔과 분노는 현재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고뇌다. 정치판의 술수, 아부, 부화뇌동, 정치인은 많고 정치가 없다. 정치인이 정치를 믿지 않는 시대라 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정치판이다.


가르치는 직업은 있으나 진정한 교육자는 없다. 교육자 또한 교육을 믿지 않는다. 한 자리 영화에만 몰두하는 교육자들에 대한 성토에 나 또한 끄덕이며 동의하고 있었다.


시의 진실, 그 힘을 믿지 않는 시인이 시를 쓴다고 했다. 시를 의심하는 시인들이 어떤 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시우는 슬프다. 열광하며 믿으며 인류를 살려낼 거라는 것을 믿고 쓴 이전의 자신은 시인이었지만, 시를 믿지 않는 그는 이제 시인이 아니라 했다.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본질에 대한 고민에 내내 숙연해졌다. 이렇게 작가는 모든 인류에게까지 다가갈 철학과 갈증으로 40년을 쓰고 읽고 다시 쓰며 시대를 밝히고 있다.


한수산은 아름답고 여린 감성으로 나를 그의 세계로 끌어들였지만, 그 이후에도 꾸준히 현세대가 잃고 있는 시대적 소명을 일깨운다. 그의 삶은 내가 휘청거릴 때마다 지팡이가 된다.


석우와 수니가 가지고 싶었던, 태어나지 못한 아기는 상처와 고통을 이겨내고 작가가 주는 본질적인 메시지로 연결될 것이다. 개인적인 감성이 세상을 향한 이성으로 건너가는 이번 장처럼, 수니는 과거인 남자의 무덤에 술 한잔을 남기고 현실에서 다시 굳건하길 소망한다.



*: 『일곱 번째 감각 - ㅅ』, 여우난골,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