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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aterialists by 셀린 송 감독, 2025

by 서희복

위선을 담아 행복을 가장한 축하의 행렬이다.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가볍고 경쾌한 조건의 조합들, 그리고 퍼즐을 맞추는 경우의 수로 짝짓기를 한다. 내 짝 네 짝 딱 맞는 배합의 짝들을 위한 사업이다.


각자 다른 정의지만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오고 가는 안타까운 기억과 상처, 통증으로 단단해지는 '사랑'이라는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


전작의 닿지 않는 슬픈 미진함이 아쉬웠는지 감독은 꽤 명쾌하게 답을 던진다. 그럼에도 그 감정을 제대로 거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잦은 눈빛들이 영화를 빛내는 별이다.


경제적 투자로 만들어지는 프랑켄슈타인적 생활양식들이 현재다. 흠뻑 즐기고 있다. 코를 만들고 가슴을 키우고 쓱싹쓱싹 키를 키우며 사회가 고정시킨 잣대에 맞추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기뻐 소리치며 산다.


삶이란 게 그런 거라며 이따금씩 길을 잃을 때는 사랑이 있는 곳에서 답을 찾으라는 아버지는 수술대의 마술이 행복을 줄거라 확신했을까. 사랑은 어디서 자라나나. 개조한 얼굴에서? 쑥 자란 키에서? 타인을 짓이기며 기만하며 만들어 낸 써도 써도 닳지 않는 부로부터?


뻔하게 앉아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릴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물질적인 자산의 가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당신의 가치에 빠졌다는 그를 보며 점점 슬퍼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맞았던 당황의 순간들을 오롯이 기억한다. 내 마음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적 카테고리 때문에 끈적해지는 사람들, 계속된 평가, 판단, 숫자로 내 가치가 매겨지는 슬픈 현실에 갈 곳은 없다.


애절히 원하는 사람으로만 남는다는 것, 그 예리한 통증이 결국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 막막함을 그대로 앓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John의 한마디가 아프게 날아들었다. 'I'm usually desperate enough to let you. I'm a beggar for you. 난 늘 게 허락 만큼 간절해. 네게 구걸하는 사람은 나지.'


Harry는 모르고 John은 안다.

나는 알고 그는 모른다.




▣ Photos from Materialists (2025),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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