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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대하여

[영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TheMet (2025)

by 서희복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공연 (The Met Opera HD Live), 클라우스 구트 연출


욕망과 불안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고뇌를 짧고 강렬한 글로 압축한다. 독일어로 연기한 살로메는 더 예리하고 깊었다.


영화 '세븐 베일즈(2025)'는 현대적 욕망과 불안, 속죄를 바라는 가여운 몸부림이 원작과 비슷한 결이었다. 영화의 다소 산만한 사건의 전개를 나는 더 매력으로 본다. 그게 불안 아닌가.



희곡 대본*에는, 헤롯왕 앞에서 살로메가 추는 춤, '세븐 베일즈'의 묘사가 '살로메는 일곱 면사포의 춤을 춘다(p.104)' 단 한 줄, 아무런 설명도 암시도 없다. 그럼에도 한 겹 한 겹 베일을 벗을 때마다 살로메는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의 욕망 속에 바래지는 삶은 자기 자신마저도 죄악시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표현되는 살로메는 언제나 하얗고 빛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이다. 예언자 요카나안(성서의 세례 요한)은 피의 저주라 한다. 형의 아내 또는 동생의 아내를 취한 헤롯이 아니라 살로메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으로 살로메에게도 치욕을 안긴다.


살로메는 요카나안을 통해 아무에게도 성적 대상이 되지 않는 자신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페라는 세븐 베일즈 춤을 새롭고 아름답고 쉽게 각색했다. 아이 때부터의 고통이 점점 트라우마가 되는 과정이 너무 슬프고 아팠다. 헤롯의 경망스러운 충동과 불안한 심리, 비겁한 처신에 절망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왜 이런 비극의 단막 희곡을 썼을까.


살로메는 그 어머니의 피를 받아 성적 욕망에 매여 사는 공주가 아니다. 유혹과 노골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살면서도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순결한 본능을 요카나안을 통해 지키고자 한 것이다. 요카나안이 순수하게 사랑할 만했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집착으로 결국 그러한 최후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살로메와 요카나안의 딜레마다. 요카나안이 그녀에게 키스했다면 요카나안 또한 욕정을 품은 타인들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살로메는 절망할 것이다. 요카나안의 생명이 없는 머리를 안고 그제야 깨달았으리라. 타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만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오스카 와일드의 고뇌와 불안, 자신도 피할 수 없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살로메로부터 정작 구원받은 사람은 오스카 와일드다. 그의 세븐 베일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포스터: Richard Strauss: Salome from IMDB

▣ *:『살로메(Salome)』 by 오스카 와일드(1891),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1894), 임성균 옮김, 지만지드라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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