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아스팔트를 적시는 날엔

무엇을 재촉할까

by 서희복

시커먼 타르가 굳은 도로에 비가 스민다. 출렁거리며 겉돌지 않고 조금씩 하나가 되어 가는 촉촉한 아침을 바라본다. 짠한 마음에 덜 가여운 광경을 한껏 담아 위로라고 가만히 소리 낸다. 나 지금 행복한 거지?


그런 행복이 모자라다는 가볍고 아픈 질문 속에 사람이 마구 필요한 날이다. 오늘 지나갈 길과 그 길 위에 퍼질 시간의 색깔을 상상한다. 초록이면 좋겠어. 조용히 평화롭게 마음속에 스며들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기뻐지는 그런 상상을 한다.


세상이 초록이 아니라는 건 귀를 조금만 크게 열면 알 수 있다. 이곳저곳의 다툼과 말도 안 되는 무자비한 기아에 사람들이 무기력하다. 말 못 하는 아이는 온기만이 생명인 듯 따뜻한 가슴에 파묻히며 두려움을 배운다. 온라인을 뒤덮는 슬픈 뉴스들과 넘쳐나는 허세와 가식을 뒤섞으며 혼란스러운 시간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안타깝다. 큰 위로가 필요한 세상을 두고 소심하고 작은 상처에 오히려 압도된다.


복잡한 새벽에 걸음을 재촉한다. 자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먼 불행과 닿지 않을 갈증이 눈에 밟힌다. 차라리 지금 바로 내 앞에 나타날 고독을 모두 치워내고 멀다 생각하는 그곳으로 떠날 용기가 있었으면. 일정한 거리가 주는 무책임의 안도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사람, 그 마음이 쏟아지는 방향은 죄가 없다.


너무 가벼이 살아서 그만큼 팔랑거리는 집착과 유치함을 옳다 하며 지내왔다는 자책까지도 이따금 내리는 소나기에 쓸어 보낸다. 저 검은 아스팔트에 벌어진 구멍마다 아프고 쓰린 상처를 꽂아두고 마음껏 비웃고 있다. 그런 자신을 문득 발견하는 날 여태껏 견뎌온 시간들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들어오라 한다. 아니, 이제 그만 견디고 싶다.


저 길도 후드득 갑작스러운 비를 모두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괜한 발길질에 영영 열리지도 않을 곳을 헤매고 있다는 나의 이 막막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은 소나기를 토하기 직전의 구름이다.


편해야 하고 변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머물러야 하고 바라야 하고 보내야 하고 잡아야 하고 놓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건 맹목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눈 속에 고인 슬픔과 외로움을 외면하는 시선을 오해했던 시간들이 무겁게 가슴에 고여 웅덩이가 된다.


느리게 배운 것들이 조용히 행동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방어적 두려움, 비겁한 회피, 이기주의의 극단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구일 수 없다. '사람'을 쓰는 글씨체는 달라도 그 속을 채우는 마음은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내 심장의 중심에서 나침반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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