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지금이야!

[상상] 바라보고 좋아하고 먹어치우기 좋은

by 서희복

내가 무척 행복할 때 너를 초대하는 건 너도 신나는 일일거야. 사람을 먹을 줄 아는 거대한 외계인이 너라면 바로 지금이야. 내가 인간 세계의 도라지 정도의 크기로 보이면 너는 자격이 있어. 통통한 도라지를 씹을 때의 그 아삭한 맛은 금방 튀겨 나온 포테토칩만큼 기분을 붕뜨게 하거든!


가장 기쁠 때 만족할 때 세로토닌에 푹 빠져 정신 못 차릴 때 너는 냉큼 나를 집어 먹어 버리는 거지. 일거양득. 나도 좋고 너도 신나고, 어때? 어제는 내가 무척 아끼는 사람을 만나 눈으로 인사하고 왔어. 그러니 오늘 내가 사라져도 그 사람은 그 눈빛을 나의 마지막으로 기억할 테니 멋진 일이지!


오늘 아침에는 평균 기울기 5에 시간당 6.5킬로로 한 시간 동안 메트로놈처럼 박자에 딱딱 맞게 땀 흘리며 걸었어. 트레드밀이 받쳐주는 내 몸은 아마 조금의 근육을 더 만들어서 쫄깃쫄깃할 거야. 특히 닭의 장딴지만큼 탄력 있는 내 허벅지는 운동할 때마다 불끈거려서 내 자부심이었거든. 한번 뜯어봐!


게다가 위장이 작고 귀여운 보릿자루처럼 몸뚱이 안에서 뜨끈뜨끈할 때 한바탕 질끈 물어주면 좋아. 지금은 레몬 한 개를 쫘악 스콰시해서 눌러 금방 끓인 물에 푹 10분쯤 담갔다가 마시는 중이니까 당근 더 뜨겁겠지. 레몬을 와작와작 먹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아마 내 끝 맛은 새콤 쌉쌀할 거야. 난 레몬을 껍질 째 먹거든.


사실 핵심은 내 중간을 왕창 씹었을 때 영양가 만점인 것들로 속을 채운 위장이야. 오늘 끝낸 점심은 두부 100그람, 수란 2개, 후추 넣은 수란즙, 구운 아몬드 15개 정도에 사과 반 개를 약 1센티 정육면체 깍둑썰기로 넣어 수제 요거트를 듬뿍 뿌려 먹었어. 그러니 맛난 즙이 츄르릅 새어 나오는 통통한 몸통을 상상할 수 있지.


내가 어디까지 너의 영양 간식이 될 건지는 내가 정할 거야, 지금부터, 잘 들어! 허벅지 두 개, 몸통 하나, 그리고 원하면 팔뚝 정도야. 팔뚝은 지방도 많지만 근육도 만만치 않아서 좀 질길 수도 있어. 먹다가 이빨 사이에 끼면 내 정강이나 종아리 뼈로 처리해도 좋아. 굵은 뼈 가는 뼈 두 개니까 네 이빨 사이 규격에 맞게 써.


이젠 남은 것들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평생 걸어 다니며 나를 고뇌하도록 도와준 발 두 개, 생각한 것들마다 글로 쓰고 타이핑하며 내 삶의 속도를 정리해 준 팔꿈치부터 죽 이어진 나의 손 두 개, 내 손가락이 가느다라니까 꼭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무도회 장갑처럼 나란히 놓아줘. 내 낭랑한 목소리가 지나던 목살은 내 머리에게 양보해 줘.


내 팔꿈치부터 가운뎃 손가락 끝까지가 39센티네. 조금 여유있게 40cmX40cmX25cm 나무 상자에 모두 가지런히 넣어 여기서 가장 가까운 화장장에 가도록 해. 소각로에서 뽀얗게 태운 가루를 연안부두로 가져가 바다에 뿌려 줘. 난 물이 좋아. 얼마간 하늘만 보며 흐르는 대로 여행하고 싶어. 그리고 아마도 바다가 다 마르면 구름이 되겠지. 그럼 더 자유롭게 바람으로 부서지고 싶어.


내가 바람이 되는 날 나를 다시 맞으러 와. 너를 위해 부드럽고 따뜻한 산들바람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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