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 스팸, 고기
하얀색과 민트색이 어우러진 멋진 식당에서 케이준베지잠발라야를 주문했다. 토핑으로 얹힌 스팸처럼 보이는 각이 날카로운 작고 도톰한 고깃덩어리에 깜짝 놀랐다. 제목이 베지잖아.
식물성 고기입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도 이질스러웠지만 아무리 봐도 고기 비주얼인 그 조각들을 보며 속이 울렁거렸다.
이리 뒤져보고 저리 뒤적이다 한입 물어봤다. 정말 고기 질감에 이빨이 들어갔다가 튕겨 올랐다. 예민한 걸까,
그제야 난 다른 사람들이 환경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고 동물 애호가라서 또는 소화가 힘들어서 등등의 이유가 내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내 살점을 씹는 것 같아서였다. 내 육신의 색깔이 노릿하게 구워져 쪼그라진 그 삼겹살 같았다. 끓는 간장물에 달짝지근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 양파 옆의 불고기처럼 희멀건 한 곳도 있고. 내가 고기를 씹던 시절, 그런 불편함을 즐기느라 혼을 내놓곤 했다.
등심, 안심, 갈빗살, 목살, 도가니, 나를 먹은 나는 더 내가 되었다. 전생까지 이어다가 내가 된 나는 이승에서 채소에 생선을 말아 달걀옷을 입혀 먹으며 고상을 떤다.
내 살점은 이제 그만,
나는 이제 용서받은 걸까.
이상한 죄책감은 스팸 통조림의 둥글게 마무리된 귀퉁이처럼 생긴 식물성 고기로부터 더 심해졌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온몸이 갈리는 형벌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갈린 살점들이 통조림으로 이승에서 팔리고 있는 건가. 작은 스팸 조각을 보며 뒤집어지려는 위장을 느끼며 편두통이 왔다.
정말인가 보네, 양심은 있어가지고.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전생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얼핏 들은 것 같다. 내가 어떤 동물이었든 아니면 인간이었든 내 살코기는 영양가가 높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기로 덕행을 쌓은 것이 틀림없다. 식인종에게 살을 발리거나 기술 좋은 푸줏간 주인에게 팔려 아주 먹기 좋은 고기로 살았을는지도 모른다.
한우였을까
염소였을까
돼지나 양
또는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