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

차가운 끝

by 서희복

새벽이 오기도 훨씬 전에 문득 깨어 싸늘하게 흔들리는 팔의 잔털에 묻힌다. 어디로부터 내려오는지 보이지 않지만 스멀스멀 나앉으며 존재를 드러낸다. 이미 하얗게 가늘어진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밖으로부터의 소용돌이가 바람이려니 그렇게 내버려 둔 무기력이려니 꿈을 꿀 뿐이다.


오래전 니콜키드먼의 '내가 잠들기 전에'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아침마다 백지가 된 기억으로 불안을 안고 하루를 버티며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그녀가 멀거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과거를 삼킨 뒤 눈에 보이지 않는 멍의 보랏빛이 서성거리며 더 불안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연결되었던 튜브를 막아 그 안에 갇힌 것들을 기다린다. 그 벽 사이의 미세한 틈을 따라 흐르는 찐득한 회한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수많은 겹들 중 하나였다고 조용히 흘러내린다. 더 이전에 알아챘어야 했던 고름주머니 같은 숨겨진 고통이 그저 흐르는 그 길에 선다.


어떻게 자신을 세워두더라도 본질을 뒤집지는 못할 거라는 절망은 조금 더 빨리 그곳을 떠나라 속삭일 뿐이다. 필요에 의한 삶, 부정하고 싶은 비루한 흔적들, 아무런 가책 없이 저질러지는 많은 비린내들에 뒤돌아 서지 못한 건 아마도 똑같은 욕망의 사슬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닫히지 않은 알루미늄 창틀이 흔들린다. 그 납작하게 쪼개진 틈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날을 휘두르며 조금씩 하나씩 서리로 내린다. 머리카락 사이의 흔들림과 눈썹을 지나는 냉기, 팔목을 시리게 타고 나가며 꼭 움켜잡은 시트 아래로 미끄러진다. 스며든 칼날 같이 예리한 바람이 건조하게 비집고 나온 발가락 사이에 증을 떨구고 간다.


더 이상 차가워지지 않는다. 천장을 향해 오른 바람은 이내 따뜻이 녹아 아 온기에 스민다.


다시 창틀이 흔들리면 안으로 넣은 손으로 시트 끝을 목에 감아 예리하게 지나가는 찬 기운을 턱밑으로 밀어낸다. 여전히 울렁이는 시트가 아래로 지나가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는 발은 온 힘을 다해 오므린다.


그렇게 외풍이 흔들다 떠나고 마침내 잠이 드는 늦은 새벽이다. 살 것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채우는 때때로의 그 불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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