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내려요

쓰며 읽으며 진한 세상이 좋다

by 서희복

청록으로 마치는 해다. 마음대로 쓰고 무겁게 읽어 내며 때론 슬픈 전율로 받아냈던 내 안의 빛과 그늘이다. 너무 평균이 아니라서, 나란하고 싶은 욕망이 정상이 아니라서 여전히 주저하며 한 해를 보낸다. 나는 그들의 빚이다. 빚을 빚고 또 빚어 빛이 될 때까지 같이 가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끝까지 빚이 될까 두렵다.


사람을 찰나로 알아가는 나는, 그들이 무심결에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무엇 하나 비집고 들어갈 만큼 내가 내밀 명함은 없다. 그들의 말을 받아내며 신기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세상 곳곳에 조용히 촛불로 타고 있는 사람들 속에 머문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다다르지 못해서 안타깝다.


이미 이룬 것이 많은 그들의 치열한 도전 속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눈빛과 목소리로 깨닫고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의 가치를 아프게 부딪히며 새기고 있다. 글에 배어있어야 할 책임도 가치도 조금씩 배우고 채우고 비워 나간다. 애정이 진해질수록 비움도 과감해야 한다는 걸 머뭇거리며 마음에 넣고 있다.


이상한, 기묘한, 그로테스크한, 고통스러운, 이해하기 힘든, 프랑스 단편 영화 같은, 시제가 안맞는, 구성이 뒤죽박죽인, 읽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너무 짧은, 뚝뚝 끊어지는, 무언가 더 채우면 좋을... 그런 저런 내 글에 달리는 꼬리표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을 때, 떠나려는 마음보다 버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쓰는 글, 쓰고 싶은 글'이 고유한 나 자신이라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꾸준히 가기로 한다.


읽게 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진한 시간을 뭉쳐두고 보니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때 쓴다. 그들이 하는 예술의 경계에 들지 못하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때가 오는 것,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에는 언제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채울 수 있다.


요즘처럼 글에 대한 비평 담소 사이의 여유가 있을때는 나를 더 멀리서 바라본다. 이대로도 좋은 건지.


나는 여전히 퇴고용 투고를 하며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글에 대한 대화에 치열하게 끼어들기 위해 읽기도 생각도 시선도 잘 정비하려고 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말과 글에 머뭇거리고 싶지 않다.


일주일에 평균 서너 시간을 서로의 글에 쏟은 한 해를 정리한다.


글담 지기로부터 온 각 작가들의 글이 담긴 예쁜 엽서를 선물로 받았다. 글담의 리더를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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