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10 한 땀 한 땀

by 서희복

작은 구멍을 크게 만들어 가며 바늘을 꽂는다. 그전에 실을 꿰고 그 끝에 조심스러운 매듭을 지어야 한다. 힘 조절을 잘못해서 실이 빠지기라도 하면 지나왔던 흔적의 허무 안으로 다시 실을 지나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실망스러우면 어떤가. 거기서 흠씬 배우고 다시 고른 땀을 향해 꿈을 꾸는 것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첫 단추를 조심스럽게 끼웠다가도 잘못된 것을 깨닫는 순간 처음으로 풀 수 있다면 다시 풀면 된다. 돌아갈 수 없다면 거기서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안달할 것도 조바심낼 것도 없다. 내 인생 내 속도대로 걸었다가 뛰었다가 기어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때론 뾰족한 바늘 끝에 손가락을 찔려 피를 보기도 한다. 얼른 입속에 물고 뭉툭한 혀돌기로 따뜻하게 감싸 다독거리는 시간마저 삶의 한 순간으로 사랑하면 된다. 그런 일은 언제나 생기니까. 게다가 상상하지 못한 일까지 가끔 생기니까 말이다. 어제는 바느질을 하다가 열어젖혀야 할 부분을 꿰매 버렸다. 혼자 웃음이 났다.


책을 만들고 있다. 한 땀 한 땀. 해보지 않은 낯섦으로부터 오는 건 찰나마다 경이로운 삶과 오버랩되는 순간들이다. 무엇을 사도 설명서부터 읽지 않고 일단 맞추고 끼우고 펼치다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세상이 순서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심도 크다. 실수해도 된다.


날카로운 바늘 끝을 돌아온 실 옆구리에 넣어 되돌아 뽑아내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첫 경험이 은근히 수줍다. 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감추고 다시 시작한다. 지나온 길에 난 흔적을 장식이라 애써 정리하고 금세 돌아서서 반대길을 두드린다. 많은 새로운 용어들이 마술 같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서술하면 된다.


간격을 정확히 재는 컴퍼스와 비슷하게 생긴 꼭지 달린 기구를 쥘 때마다 손을 떤다. 예민한 쇠자의 패인 밀리미터를 울림으로 느끼며 밀리 단위를 재는 거다. 실수를 하지 않고 싶을 때 이 기구를 생각하면 된다. 아주 가느다란 딸깍! 소리에 기분이 좋다.


책 등의 뚱뚱한 부분을 부었다고(swell) 하는데 거기를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동물 뼈로 만들었다는 종이 접기용 도구가 손에 부드럽게 잡히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이 심장이 쪼그라든다. 잘하고 싶다고 내 안의 나에게 속삭인다. 납작한 도구가 미끄러져 엎어져 뽀안 종이 겉면에 움푹 흔적이 생긴다. 호호, 아프겠다.



구멍도 거칠고 실이 지나간 길도 방황하듯 구불거린다. 내가 책임져야 할 구멍과 실과 모양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가 온 거다. 노동이 기쁘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얹어두고 싶은 시간들을 잘 묶어가며 서로 이해하며 통하는 세상을 상상한다.


서로 꼬아지며 연결하는 몸짓에 하루의 의미를 실어 아직 미완성인 페이지 안에 숨겨둔다. 그 어떤 누구에겐가 이 순간이 전해질 때 바늘에 찔려가며 꽂아둔 의미가 받는 사람의 새로운 의미로 전해지면 좋겠다. 조금 더 밝고 힘을 주는 문장이기를.


어디가 완성일지 그 최종 끝일지 모른다. 단순히 표지를 씌웠다고 해서 책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의 움직이는 단어들이 문장들이 흥분해 있어야 한다. 전해지는 그 순간 뜨거움에 전율하도록 힘껏 눌러 새기는 거다.


손가락 끝의 상처가 많을수록 밀어내느라 힘주었던 살이 단단히 굳을수록 더 진하게 묶이는 책이 되리라. 굳건한 삶의 교훈을 주는 순수한 노동의 기꺼운 힘이다. 지난 통증의 근육으로부터 온 기운을 모아 바늘에 기대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