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허물었다 만들고 다시 허물고
바람만 바람으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고 날리는 눈 아래로 지나간다. 나무는 자연스럽게 잎을 떨구고 인간은 부자연스럽게 나뭇가지를 꺾는다. 걸으며 뛰고 날으며 보는 것은 인가의 세상은 일 밀리미터라도 더더더 커지고 높아지고 허세를 부리려고 손을 뻗는다.
바랐던 것들이 바래지고 자연은 부자연으로 비자연으로 시들어가며 인간을 닮아간다. 비워내며 생명을 비축하는 굵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얼마나 아프게 비워야 하는지 온 등을 기대어 질문을 한다. 그늘을 늘인 나무의 냉기가 나의 온도를 덜어가 조금은 힘내라 다독이며 돌아선다.
나무를 모아둔 공원마다 벤치를 앉히고 사람을 받는다. 흐르는 강마다 다리를 걸치고 인간의 산책을 허락한다. 한 걸음마다 무거운 체취와 뜨거운 입김을 남기고 강이 올려다보며 침묵하는 눈길에 당연하다는 듯 흘러가라 손짓한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함께 온 공허를 지금 이곳에 떨군다.
메꿀 수 있는 곳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가고도 더 남은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인간은 그런 종족이어서 무엇이든 끊임이 없다. 끝까지 파내고 맨 아래까지 긁어내며 자연의 경계를 명령한다. 가지런하게 풀과 나무의 색깔을 맞추며 모양을 빚어내고 그 뿌리의 수명마저 잡고 흔든다.
자연의 이자로 살아야 한다는 오래전 작고한 작가의 목소리가 허무하게 휘발하는 시간들 그리고 공간들에 나 또한 혼란스러운 부피로 자연을 극렬하게 소비하고 있다. 떠나온 곳에서부터 몸뚱이를 밀어 들어가고 있는 곳마다 희망을 보리라는 다짐들이 얇아지고 차지한 공기마저 누추하다.
매일 더해지는 무거운 죄책감으로, 해소되지 않을 증상으로 꾸준히 앓는다. 내 한몫의 소원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순수한 땅을 향한 바람은 지속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내 손가락이 가리켜야 할 방향과 실제 살아가는 태도가 모순이 아니기를 바란다.
항상 반복하는 같은 약속들이 다시 허무하게 돌아가 만들고 또 만들어 쓸모없는 소비에 넋을 팔아도 다시 그 마음을 허물고 또 허물며 반성해야지 한다. 오늘 내가 소비한 산소만큼이라도 자연에 돌려줄 수 있는 길은 멀기만 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평정을 유지하는 일, 땅의 온기를 향해 옳게 남는 길에 귀 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