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초단편소설] 흔적 (3-1)
'네가 좋아하던 것들은 그대로 두었어. 가져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 공간이었지만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을 꼭 넣고 싶었다. 가장자리에 작은 수도꼭지와 개수대가 움푹하니 간단한 과일도 씻고 따뜻한 차나 음식을 같이 만들며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았다. 채서는 식탁에 맞춰 산 키가 큰 바체어에 앉아 작은 메모를 적어 냉장고 문에 붙였다.
'오늘부터 3일, 차분히 잘 정리하기 바라. 3일 후부터는 네가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잔인한 말이었다. 채서의 단호함이 떨리는 손을 따라 글씨에 꾹꾹 새겨졌다.
'너를 다 가지고 싶어.'
오래된 책을 수선하고 원본에 가깝게 제본하는 일을 하는 단주를 향해 채서가 먼저 던진 말이었다. 단주가 영국 어느 대학원에서 북아트를 전공하고 한국에 들어와 고문서나 낡은 책을 예술적으로 제본하는 공방을 운영한 지 십 년쯤 되었을 때였다.
1층에 위치한 그의 오래된 공방을 지나다니며 항상 뭔가에 집중하며 허리를 구부리고 마네킨처럼 꼼짝하지 않는 단주를 보면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한 자세로 저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자세히 보면 그의 눈동자와 손가락들이 미세하고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멈춤 같은 어쩌면 평온으로 안주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공기에 빠졌는지도 몰랐다. 단주의 공방 건물 2층에 채서의 작업실이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꾸준히 전시를 하기 위해 두어 곳의 대학 강사를 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예술하는 사람에겐 거기까진 필요 없다는 박사를 마치고 졸업하면서 앞날이 환한 신예 작가라는 찬사 속에 작업실을 열고 그림에만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세간의 관심은 바람에 촛불 꺼지듯 급속으로 사라졌지만 화선지 앞에서만은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 여백 앞에서는 좌절이라는 단어보다 뜨거워지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 때 간간이 팔리는 그림에 작은 자존심이 걸리곤 했고 가끔은 대작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 몇 곳에서 강의를 하며 그나마 꽤 큰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채서의 작업실보다 몇 년은 더 앞서 들어온 제본 공방에 관심이 간 건 매일 다른 구석에서 꼼짝 않고 집중하는 단주의 모습 때문이었다. 채서가 흰색 종이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모습과 겹쳐지곤 해서 이상한 동지감이 들었다.
'저, 카모마일티 좋아하세요?'
단주가 먼저였다. 매일 흘긋거리며 지나다니던 채서를 그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주가 차를 만들며 자기 이름이 흔치 않은데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며 묻지도 않은 설명을 했다. 단주端珠, 끝에 있는 구슬이라는 의미라며 일은 그 끝에서 잘 마무리하고 사람에게는 끝사람이 되라는 뜻이라 했다.
사회성이 없는 채서가 유일하게 만나 웃고 대화하는 사람이 단주가 되었고 단주는 채서가 무엇을 하든 받아주었다. 한 개 층을 사이에 두고 매일 만나는 사이였지만 채서는 그 층이 점점 얇아져 없어지거나 투명해져서 아래층에서 일하는 단주의 모든 시간을 따라다니고 싶었다. 그때 단주에게 한 말이었다. 그를 다 가지고 싶다고.
채서가 사용하던 작업실 가운데에 있던 더블침대를 한쪽으로 붙이고 기역자 싱크를 놓자고 한 건 단주였다. 효율과 동선을 치밀하게 따지며 기역자를 주장하던 단주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채서의 아일랜드 식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그런 낯섦조차 서로의 관계 속에 아름답게 스며들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