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웃음
꽤 오래전 여름, 늘어져 침 흘리며 앉아 있던 커다란 쉐퍼드가 옴짝달싹 하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지나가는 나를 훑어본 적이 있었다. 내 기분에서 여름의 진한 땀냄새가 났다. 쉐퍼드는 이내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었다.
그레이트데인을 만났다. 손을 뻗으니 첫눈의 두려움을 금세 떨치고 볼을 비비고 큰 몸을 내게 기댔다. 옆으로 넘어갈 뻔했지만 그 체온이 무척 따뜻해서 행복했다. 그레이트데인을 만나야겠어. 아버지를.
온순한 거인, 칼날 같이 포효해야 할 순간을 정확하게 아는 카리스마에 곰을 몰아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개다. 큰 개는 천천히 이끈다. 그런 점잖은 리더십에 매료된다.
그레이트데인을 채 헤어나오지 못하며 걷다가 내 팔뚝만한 개한테 물릴 뻔했다. 위아래 이빨이 하얗게 모두 드러나며 눈빛을 가렸다. 짖는 소리는 영락없는 비겁했다. 짖고는 바로 주인 뒤로 숨었다. 순간 풀쩍 옆으로 높이 뛰며 마주한 건 작은 눈 안의 두려움이었다. 밖으로 지르는 소리는 내면의 공포를 더 크게 할 뿐이다. 작은 경박함에 배운다.
큰 마음의 고요하고 뜨거운 심장을 저장해 두었다. 가는 속도도 오는 온도도 맞춰야 할 다이얼을 돌려둔다. 그런 생명이 드문 건조한 땅에 비가 내린다. 웅덩이마다 가득한 냉기가 부조리한 세상을 채운다. 그래도 살만 한 건가, 꾸준한 질문은 항상 타당하다. 아직은.
나보다 덩치가 더 큰 쉐퍼드가 아버지의 자전거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달려가는 커다란 개를 따라 전속력으로 헉헉대던 또래보다 작은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누리지 못한 거대한 문명 속에 묻혀 살다, 까맣게 막막했을 아버지가 떠오른다.
보이지 않게 침잠해 있던 시간이 묵직한 동통으로 머물고 있었나 보다. 나는 만원을 벌면 만 원어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삼만 원을 벌면 또 그만큼 살면 된다고. 아버지는 만이천 원을 벌고 싶은 날 그게 가능한 길을 뒤로하고 희망이 없는 낡은 길을 택했다. 왜 저 길로 가시지? 그게 그땐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만 관심이 있었다. 초코파이나 군고구마가 들린.
일주일에 한두 번 내가 닿지 않는 장롱 위에 과자 종합 선물 세트를 올려두던 아버지로 몹시도 돌아가고 싶었을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기만 했던 시간들이 자꾸 까만 눈물이 된다. 세상에 눈뜬 마스카라 자국이 아버지의 뒷모습에 얼룩이 된다.
아버지의 큰 개가 시간을 퍼올린다. 회한과 깨달음을 주는 작은 개들이 주는 자잘한 상처들이 겹겹이 쌓여 굳은살이 된다. 그때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채도가 거의 없는 웃음, 그건 웃음으로 정의되서는 안될, 삶은 정말 살만한지에 대한 깊은 물음이었다. 살만했던 걸까. 살만한 걸까.
꼬질한 아코디언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손마디 사이 접힌 주름들 속에 유년의 내가 웅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