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오렌지주스

[강연] 박준 그리고 시와 산문, 단편 영화, 클럽창비, 2026

by 서희복

노랑으로부터 노랑을 따르며 초록이 되는 신비를 본다. 2025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라는 세 개의 이름을 읽는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갈망이다. 이미 완전하게 완벽하게 펼쳐졌기를 바라는.


서OO, 황OO, 박


시인의 북토크를 신청했다가 80명의 독자를 초대한다는 글을 읽자마자 취소했었다. 한 글자에 꽂혀 오픈런을 하고 들어갔다가 둘러보고 바로 줄행랑친 꼴이다. 후회하지 않아. 80명.


강연 이래서 신청했는데 추첨제인지 나중에 알려준단다. O냐 X냐, 심심풀이 50%에 웃는다. 꼭 와라, 주차지원 안 하니 대중교통이용하고.


메시지를 반으로 접어 넣고 근처 카페에서 에스뿌레쏘 콘파냐를 떠먹는다. 이름은 같아도 모든 에스뿌레쏘 콘파냐는 다르다. 끈적이는 점도에 맞춰 이름이 달라도 좋겠다. 이건 예스파렛또 콩푸니, 느끼한 감칠맛.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걸 시로 쓴다는 시인은 인간적이기보다 피인간적이다. 닿는 대로 인간을 마주하며 그에 따라 대강 산다는 거다. 비슷한 면모에 목소리를 주워 담는다. 소리가 마음에 들어 고개를 기울이고 불명확한 실루엣이 일렁일 때마다 소리의 톤을 맞춘다. 예민하고 살짝 비뚤어진 눈빛을 가진 시인이 마음에 든다. 아르바이트의 세부 사항이 궁금한 건 그에 대해 관심이 간다는 거다.


제목이 어떻게 지어지는 거지? 뭉툭한 대답에 질문한 사람이 엔에프이길 바랐다. 그래야 모두 펼쳐서 이해가 가능할 테니. 행복했다니까.


롤랑 바르트가 스멀스멀 나올 때 살짝 긴장했다. 시인은 노력하는 사람이야. 세상을 읽고 배우는 사람. 투디움과 펑크튬이 나올 때 체계적 조직적 효율까지 따지며 길이를 맞추고 높이를 조절하고 숫자를 계산하며 시를 쓰나 본데, 조금 시시해졌다.


누구나 살아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솔직해서 더 내 심장을 쑤욱 내밀고 싶어 졌지만 조용하게 웃는다. 북토크는 위험한 곳이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그렇게 말한다, 글을 사랑하면서 글을 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사람들에겐 사랑이라는 주관적 깊이가 다 다른데 롤랑 바르트는 일단 던지고 본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교육 매춘이라니, 바르트의 정의에 뒷걸음치다가 끄덕이던 기억, 그렇다, 요구와 커리큘럼에 딱 맞춰야 하는. 하지만 얼마나 초월한 가치를 즐기느냐에 따라 제도와 규율 안에서 스스로 가져가는 아하! 순간들이 경이롭다. 가 매춘이 되지 않기를.


박준 시인의 최근작, 라시도미레에 펑크튬의 단어들을 건져 올린다. 너를 기다릴 때 흐르던, 엇갈림, 매듭, 구부정하게, 가난이 생활을 반기듯.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기로 했다. 가끔 지나치기로만 해.


나는 그의 시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리 한다는 사인회를 위해 시집을 사지 않았다. 귓등을 넘어 슬프고 감미롭던 몇 줄의 시구와 가끔 보이는 출판사 홍보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는 시인의 얼굴을 기억한다. 수줍게 저항하는 그의 목소리로 진행된 강연과, 이후 상영된 30분이 채 안 되는 단편 영화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어 살려는지 끄덕거린다.


무심한 듯 갈증 하면서, 따뜻하고 싶지만 다가가지지 않고, 싫은데 마주 보고 오래 있곤 하고, 철 지난 변명에 꽤 오랜 시간을 쓴다. 시인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같이 걷는 것 같지 않은데, 조금만 기다리면 손이 닿을 것 같은 그 거리에서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된다.


오렌지 주스 210밀리와 섞인 보드카 100밀리의 불명확한 알코올 도수가 이 시인이다.


박준을 읽는 것보다 그의 시를 산문을 영화를 들춰보는 것이 아주 조금은 더 행복하다.


선물이라며 시인이 남긴 산문, 어떤 모습은 지지 않는다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