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의 연대기 by 크리스틴 스튜어트 감독, 2026
The Chronology of Water
얇은 낱장에 스민 피로 흐르는 눈물과 통증이 가장 낮은 표현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자맥질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크게 한번 뒷걸음 하도록 만드는 별 말이 없는 이미지의 겹이다. 하나의 겹이 다른 시간대와 겹쳐 나타날 때마다 곤두서 거칠어지는 피부와 끓는 체액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좌절을 겪는다.
끈적한 피 속의 상처는 그 어떤 크기로도 깊이로도 설명될 수 없다. 어떤 위태로운 정당화가 가능한가. 무기력한 시선들 굴종해야만 살 수 있는 시간의 비릿한 수액들이 두려움을 싸안고 세상 전체를 나뒹군다. 그런 중독들이어야 타당하다. 그런 망각의 노력이어야 살아낼 수 있다.
충족되어야 할 것들이 배제되어야 할 것들로 대체될 때 인간은 그 한계를 뚫으려 하고 끊임없이 시험하려 한다. 그런 과정들이 고통을 극대화하고 지울 수 없는 것들을 눈앞에 대고 흔든다. 무엇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혼돈과, 불명확한 쾌락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학의 눈물, 아름답게 받아내려 위태롭게 버티는 그녀와 함께 오열한다.
물은 모든 것들을 안는다. 아주 작은 입자들이 고통의 사이마다 위로의 거품이 되고 자신의 어둠을 벗어내도록 힘껏 뜨겁게 휘감는다. 물속에 들어가 조용히 눈을 뜨면 어느새 몸안을 휘돌아 나가며 궂은 찌꺼기를 훑어 나간다. 눈물을 희석하고 염증을 식히고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얼마간 안전지대가 된다.
가장 더럽게 오염되어 비윤리적인 것도 물이고 가장 성스럽게 위로하는 것도 물이다. 항상 젖어사는 인간들의 활성화되는 욕망의 습도에 따라 어떤 고통과 고뇌가 삶을 집어삼킬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비뚤어진 검은 체액이 향하는 방향에 서서 그녀가 버텨내려 안간힘을 쓴다. 상상하는 단어들이 위안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명의 촛농을 받아내며 뜨거움을 견디는 과정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으므로, 그래야만 그 모든 과거로부터의 고통과 좌절의 검은 파도를 견뎌낼 수 있으므로. 그녀가 물에 뛰어들 때 휘몰아치는 하얀 물보라와 숨을 쉬려 물 밖으로 나올 때의 가느다랗게 열리는 물길에 손을 뻗었다. 그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무게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왔다. 어떤 장면들 아픈 기억들 일기 같은 기록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동기를 가지고 있다. 매일, 어떻게든...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닌 살려고 써야만 하는 그런 절실함은 그저 상대적인 것일까.
강렬하고 아름다운 고뇌와 좌절, 중독의 과정에 대한 흐름이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로 남았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타고 그녀의 트라우마가 흘러내렸다. 그녀가 남긴 이미지마다 다른 버전의 나의 이야기를 한다. 철학자의 등을 쳐 털어낸 먼지로부터 얻어낸 글감보다 경험으로 나온 뜨거운 삶이 녹아든 이야기가 좋다.
그게 비극이라서, 결국은 극복하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 포스터 일부 from IMDB (International Movie Data-b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