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왜 산으로 가니
처음엔 판타지였지. 이름도 예쁘게 준비했어. 자연을 좋아하면 자연적인 이름, 첨단을 좋아하면 일렉트로닉 펑크뮤직스러운 그런 이름을 만들기로 했거든. 자연을 상상하는 이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소리 내고 싶게 오랜 시간을 고심하다가 만들었어. 성도 이름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한 영혼이 될 나뉜 시간에 대해 쓰고 싶었거든. 시간을 지키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인데 술이 주인공인거지. 소설이라고 시작해 두고 쓰는 족족 가관이라는 관에 쑤셔 박고 있어. 혼자 재밌어서 낄낄대다가 여차저차 첫 편을 써서 발행했어.
기억력도 나쁜데 게으르기까지 해서 뿌려둔 복선의 씨앗들이 어떻게 싹을 틔울지 여전히 아이디어는 없어. 그때그때 튀어나오는 대로 쓰고 보니 로맨스적 스킨십과 미래를 암시하는 접선용 스킨십의 거리마저 불명확해. 틀에 맞추지 않으려 틀 밖을 헤매다 보니 밖에서 헤맨 흔적이 틀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땐 점을 어떻게 흩트릴지 선을 어떻게 꺾을지 면을 얼마큼 울퉁불퉁하게 할지 마음껏 뛰고 튀고 놀다가 공간의 좌표를 찍어 연결하면서 상상했던 그림의 아주 작은 일부가 완성되는 거야.
초고는 쓰레기라니 걱정 말고 힘을 빼고 주고 할 거 없이 장르만 두드려서 완성하는 거야. 신기한 반전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배운 게 없으니 일단 재미보고 싶은 어느 곳에 끼워 넣는 거야. 스킨십의 촉감과 온도에 신경 쓰면서 눈빛과 목소리가 교차하는 곳을 어떻게 묘사할지도 상상을 잔뜩 해두지. 낯선 거리를 좁혔다가 늘렸다가 어떤 향기들이 왔다 갔다 몸짓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물리적 거리를 조금씩 좁히는 거야. 좁히는 데는 술이 최고잖아. 차 한잔 하시겠어요 보다는 무심히 건넨 위스키 한 병이면 딱 좋겠어.
그래서 위스키를 공부하다 뛰어 나가서 40도, 43도, 46도, 57도, 61도 한잔씩 시음하고 들어오지. 그때 할 수 있는 건 푹신한 침대에 꺼져 들어가는 거밖에는 없어. 한잔이 대체로 35 밀리리터인데 다섯 잔이나 마신 데다가 도수가 엄청나니 일단 꿈속에 기대는 거지. 꿈에 소설의 주인공이 나타나 뭐라 뭐라 하지만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는 없어. 대체 왜 꿈에는 안개가 잦은 건지 모든 게 불명확하지. 거기서 시작하면 돼. 소설의 소재중 무언가 꿈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길몽이라고 흐뭇해하면 그뿐이야.
띵한 머리에 새벽에 깨서 삐딱하게 머리를 벽에 기대고는 가장 신선한 상상을 하지. 아, 위스키는 병에 들어가잖아. 얼마큼 채울지는 거의 정해져 있지만 미세한 차이의 부족한 양이, 아니 채워지지 않은 부피가 시간이 되는 거야. 시간을 마시려다가 그 시간을 채워야만 하는 그래서 위스키가 되어야만 하는. 중독이 아니라 황홀한 영혼의 이탈이지. 이걸 어떻게 묘사할지 뇌의 주름을 폈다 접었다 하다가 스르르 다시 침대에 쓰러지지. 과음으로 건조해진 아침, 커다란 유리잔에 얼음물을 한 잔 마시고 나면 꿈속의 상상이 다 달아났다는 걸 깨달아.
그럼 그때부터 차분히 다시 생각하면 돼, 장르가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