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티멘탈 밸류 by 요아킴 트리에 감독, 2026
Sentimental Value
영화라서, 그곳에 사는 자들과 빛의 명패를 분석하는 자들로 나눈다. 어디에서 최고였는지 어디에서 죽었었는지 다시 어디에서 사라지고 싶은지 각자 자신을 살다 나간다. 분석이나 평가는 마치 그러한 것처럼 떠돌 뿐이다.
그럴듯한 삶의 복제판인 것 같지만 사실은 희망을 절망인 줄 모르고 불을 밝히려는 간절한 확장판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치유의 간증을 들으며 마주한 상처를 서로 대어 보고 추켜 세우며 모두 잘될 거라 빈다독임을 하려는 것이다.
걸러지고 남은 미지근함으로 숨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엮어야 하는 고뇌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런 통증이 들리지 않는 소리 입자로 삶에 촘촘히 붙어 붉게 전이되는 길목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경이를 본다. 내 삶에도 기적이 있었던가. 허락하는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며 걷게 될 어색한 시작이다. 지금 막 그렇게.
남은 질문들만이 오래 부유할 것이다.
채우고 싶은 공허는 소음마저 결핍된 곳으로부터 오나. 양극으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은 어디로 부풀어 오르나. 눈빛은 왜 항상 흔들리나. 행복한 순간들이 불안을 더 진하게 하는 이유가 뭔가. 말하지 못한 공포는 되돌아오는 건가. 명랑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는 찰나의 이별인가. 그림자는 왜 아름다움으로 뭉뚱그려지는가. 통증이 피어나는 길 위의 보이지 않는 멍은 외부로부터의 치유가 가능한 걸까. 두려운 자와 두려움을 준 자들의 눈물이 얽히며 깨달아간다는 건 너무 쉽지 않나.
거대한 이유들을 가득 남겨두고 간 자리에는 각자 풀어야 할 매듭들이 놓인다. 알아서들.
말하지 않음으로 드러나는 미세한 균열의 증후와 공기를 가르는 먼지가 한 몸이 되는 순간들에 집착한다. 먼지는 빛과 동행하며 발현한다. 보이는 것들이 주는 감정과 표정들은 살아나가야 할 몸부림의 매우 일부일 뿐이다.
혼자 풀어야 할 시간, 도저히 해내지 못할 시간들이 남기는 흔적들이 타인을 할퀴며 지나가는 길목을 오래 바라본다. 밀고 나가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모자라다. 들어내야 할 존재로서의 이물감이 느껴질 때마다 옳게 느끼는 순간들을 갈망한다. 그래서 살고 그래야 죽을 수 있다.
거친 죽음은 남기는 그림자마저 미화할 수 있지만 결국 잔 파편을 쥐고 살아야 하는 나머지에게는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고통이다. 당장 목줄을 건 예정된 끝도 죽음이지만 그것이 이어가는 공포는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삶에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깊게 드리운다.
태어난 날,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상처에 대해 스스로 옳은 시작과 끝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 사진 from C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