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영화로 채우는 하루가 비겁해도
꽤 오래전 영화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주제가를 듣는다. 그랬으면 그랬다면... 그 영원한 주제를 다루는 수많은 영화 장면들이 지나간다. 펑키한 리듬과 컬러에 흔들거리며 영화 채비를 한다. 오늘은 다섯 시간의 러닝타임에 박혀있을 것이다.
빔 밴더스 중이다.
모든 것이 매끄럽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슬럼프인 듯 단순하다가 심장을 정통으로 겨냥하는 나약하고 얇은 사라짐을 겪는다. 그런 게 가능한 세상이 아니라서 그러는 건가. 그래야만 하는 거였지. 그렇게 파리, 텍사스를 향해 걷는다.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판타지인지 알 수 없어도 된다. 용기라 불러도 될는지.
타인의 예정된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단호하지 못한 어설픔을 따라간다. 희망과 폭력과 죽음의 다양한 조합을 놓고 어떤 굵기로 목이 졸리면 좋을지 혼자 셈을 해본다. 미국인 친구라면 능히 그러리라고. 2026년에 서서 오십몇 개의 별의 야만을 목도하는 두려움, 용기가 스며 나올 입구를 막고 영원히 뜬 눈이 된다.
인간에 대한 야누스적 본성, 나눌 수 없는 이면의 선, 그 선보다 진했다가 순백으로 스러지는 악, 선도 아닌 악도 아닌 그저 흔들리며 왕복 추가 된다. 그 추 사이를 부지런히 채우는 간교한 언어, 말과 글의 신성한 가치는 찾을 수 없다. 그들의 거짓이 싸움이 되고 그들의 폭력이 전쟁이 된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주홍도 아니고 버건디도 아닌 가장 얇게 발려야만 보게 되는 비린내 나는 핏빛을 선사하는 빔 벤더스의 제목과 크레디트의 텍스트는 애초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여전히 붉디붉다. 의도적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깊게 들어앉은 찢기기 쉬운 두께는 이미 너무 무디다. 흐르는 것들을 느끼지 못하는 뭉툭함, 눈물도 피도 습도가 없다.
이 세상 끝까지, 끝날 무엇들에 대한 이야기일지 끝내 남을 것들에 대한 집착일지 알 수 없이 빈 마음을 열고 앉아 담아 오려고 한다. 세상의 본질에 대한 무거운 잔해와 생명에 관한 무지 또는 무심한 심장을 양손에 쥐고 대체 거기에서 내 부피가 어떻게 변할지 두렵다.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혼을 떠갈 부유를 기대한다.
비굴하게 세상을 외면하고 있는 건지 두렵다.
감독이 던진 제목만 안고 들어가 내 남은 삶의 제목을 건져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