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도난당하기, 뉴욕 경찰서 방문하기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계획을 세워서 미국이 아닌 여행지도 척척 다녀오는 걸 보았는데,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모가 있는 곳으로 바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모가 끓여주는 감자탕이 먹고 싶어서 간 것이 70%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학 한 달 전부터 나에게 뉴욕에 놀러 온다며 연락이 온 친구 덕분에 계획이라는 것이 생겼다. 8일씩이나 온다고 하길래 부담스러워서 없던 가족여행을 만들어서 4일만 함께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내 집에 누군가를 호스트 하며 챙겨주고 구경시켜주는 일을 지극히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중간고사에 치여 친구고 여행이고 뭐고 노트북 화면만 보며 죽어가던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여름에 부모님을 모시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간다고 하며 사전답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토론토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생각 없이 끊어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캘리포니아에서 친구가 놀러 오기 4일 전, 나는 허망하게도 지갑을 도난당하고 말았다. 패딩을 벽에 걸어놓고 밥을 먹던 도중 어떤 남자가 손을 주머니에 쓱 넣는 것 같은 CCTV 화면을 보았을 때 웃음만 나왔다. 주민등록증, 미국 면허증, 학생증, 체크카드, 집 열쇠, 89불짜리 교통카드가 모두 공중분해된 셈이었다.
시험 전 날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왜 내 패딩이었는지, 찾을 수는 있는지 스트레스에 쌓여가면서도 새로운 학생증을 발급받을 때 경찰 신고 증명서가 있으면 무료라는 것을 보고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참 짜증 나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경위서를 작성하고, 디테일한 질문들에 ‘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만큼. 모든 서류 작성과 신고 과정 후 나에게 돌아온 건 24시간 후 신고가 접수된다는 말 뿐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지갑은 쓰레기통에서 나뒹굴고 내 신분은 뉴욕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에 밥맛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
유학 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설움을 느꼈다. 혼자 타지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서류를 작성하고 내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했다는 게 왠지 서럽고 한숨만 났다.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렇게 무기력한 일이었던가. 뉴욕이라는 불빛과 사람 가득한 화려한 도시에 온갖 밥맛과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 후 며칠이 흘렀고, 친구가 오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