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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16. 2019

감각을짓다2

현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배경

주 : 오랫동안 다듬어 온 원고를 조금씩 풀어놓습니다.  


최초의 건축


비상계단의 그림자를 두고 싱거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싱겁다고 표현한 이유는 짐짓 겸손해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정말로 새삼스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건축 역사의 시작으로 꼽히는 건축물들의 공통된 특징이자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이야기한 ‘현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의 변화와 햇볕의 흐름이 막연한 감성의 대상이 아닌 치열한 생존의 조건이었을 때, 그리고 그런 변화와 흐름이 ‘이해하는 과학’이 아닌 ‘알 수 없는 신비’로 머물러 있었을 때의 일이었으리라. 대중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은 신비를 권력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잉여노동력의 결정체인 건축은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스톤헨지가 지어진 정확한 배경과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원 한가운데에서 바깥을 향해 바라보았을 때 멀리 따로 떨어져 세워진 커다란 돌(heel stone)이 하지 때 해가 뜨는 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짐작하는 것이 유력한 해석이다. 거대한 해시계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매년 하지가 되면 일출을 목격하기 위해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스톤헨지에 모인다고 한다. 묵직한 돌기둥 사이로 햇볕이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지만 당시에는 계절의 흐름을 확인하는 성스러운 의식을 위한 특수효과였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을 권력(건축물)을 통해 확인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매년 하지의 정오가 되면, 남미에 남아있는 오래된 피라미드의 가파른 계단에 커다란 뱀 모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고 한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출된 효과이다. 계단 위에 뱀 그림자가 꿈틀거릴 때, 제물로 지목된 사람의 목을 잘라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리며 피의 제사를 치렀을 거라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현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배경’이라는 건축의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장면들인데, 앞서 다루었던 비상계단 그림자 이야기처럼 막연한 감성의 차원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 도구로서 건축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지금도 건축설계에서 햇볕은 중요한 고민거리인데, 주로 쾌적함이나 위생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의 의미에서 다룰 때가 많다. 주택을 설계할 때 ‘기왕이면 남향이 좋다.’ 거나, ‘여름의 따가운 저녁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 서쪽으로는 큰 창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계획 요령이다. 더 나아가, 아파트 설계할 때에는 ‘모든 집이 하루에 최소한 몇 시간 이상은 햇볕을 받을 수 있게 계획해야 한다’는 법적인 강제 조항에 맞춰야 한다. 종교시설이나 기념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햇볕으로 빚어내는 감성적인 연출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지금 어떤 건축가가 햇볕의 시각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것으로 디자인의 가장 큰 의미를 두겠다 한다면, 현실감각이 부족한 철없는 건축가라 비아냥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최초의 건축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임무였고, ‘최초의 건축주들’에게는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여 건축을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안전막과 바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사장 풍경이다. 아직은 뼈대까지만 만들어진 건물에 안전막을 둘러놓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밋밋하고 싱거운 건물의 표정이 순간 돌변해서 역동적인 조형이 연출된다. 일상의 경험을 뛰어넘는 커다란 스케일의 변화가 인상적이었고, 평범한 건물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묘한 곡면 모양 또한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움직일 것 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물 껍데기가 힘차게 들썩거리는 상황 그 자체였다. 마치 죽었다 생각했던 거대한 동물의 시체가 갑자기 깊은 숨이라도 쉬는 것 같은 모습!


신기한 마음에 찍은 사진을 마음속에 새겨 두고 지낸 지 10년이 넘게 지난 어느 날.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맞은편 건물이 철거되면서 건물 전면에 안전막이 드리워지는 일이 있었다. 창 밖 코앞에 바로 보이는지라, 안전막의 출렁임을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안전막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겉으로 드러내는 배경이 되었다. 바람에 따라 출렁거리는 안전막은 수직으로 세워진 거대한 보리밭이나 호수의 표면 같았다. 바람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흐름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패턴이었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패턴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빠르게 지나갈 때도 있었고,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거나 아래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었고, 갑자기 운동을 멈추었다가 엉뚱하게 방향을 바꿀 때도 있었다. 통일된 방향 없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번져갈 때도 있었다. 3차원의 공간을 채우며 꿈틀거리는 패턴이 2차원의 평면에 순간 투영된 모습. 그렇다. 바람은 일정하게 흘러가는 움직임이 아니라, 공간을 번져 나가는 입체적인 패턴이었다. 매일 창 바깥으로 바라보는 공간이었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바람의 표정은 헤아릴 길이 없었다. 패턴이 이렇게도 입체적이었는지, 이렇게도 표정이 풍부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건물을 딱딱한 재료로 튼튼하게 만든다. 그래서 건물은 바람의 변화에는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건물이 어느 정도 이상 높아지면 바람의 힘이 중력의 힘 보다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고 하는데, 일상의 관점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건물이 바람에 반응하여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다거리가 된다. 그 정도가 심해진다면 사건사고로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잠시나마 건물 주변을 흐물흐물한 안전막 따위로 두를 때가 있는데, 이때 건물은 바람의 입체적인 패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배경과 거울이 된다. 말뚝이 물결을, 비상계단이 햇볕을 드러냈던 것처럼.


우리는 바닥판을 수직으로 겹쳐 올리고 입체공간(고층건물)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고 있지만, 중력 때문에 생활 영역은 늘 가장 가까운 바닥 언저리에 머물 수밖에 없고, 일상에서의 공간 체험 역시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마음 크게 먹고 찾아가는 테마파크 같은 곳에서 잠깐이나마 입체적인 공간 이동의 감각을 실감할 뿐이다. 그래서 바람과 같은 본질적으로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 패턴조차, 창문이라는 한정적인 표면을 통해 들어오는 평면적인 흐름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쉽다. 


창문 너머 펼쳐진 안전막을 통해 우연하게 목격한 바람의 패턴은, 바람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평면적으로 바라보던 공간을 새삼스럽게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감각을 일깨워서 세상을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건축의 잠재력이 보다 다양한 감각과 재료와 매체를 통해 확장될 만한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세번째 조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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