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학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아이는 내일 개학을 앞두고 일찍 당겨질 기상시간이 부담스러웠는지 스스로 먼저 잠자리에 누웠다. 아주 당연하게도 잠들기 전까지 잠이 안온다며 괴로워 했다. 오늘 하루는 외출도 하지 않고 이틀째 쉬지않고 내리는 비를 배경삼아 오붓하게 밥을 해먹고, 책을 읽고 셋이 모여 유튜브 몇편을 보며 경건한 시간을 보냈다. 이건 서로가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내일이 꽤 부담스러운 거다. 그리고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과 일본, 여러 국내 여행을 다니며 야무지게 붙여다녔던 세식구의 이제 생활이 각자의 시간으로, 역할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니 조금은 몸을 사리고 정리 할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와주니 더좋고.
오늘은 소파에서 지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얘가 키가 언제 이렇게 컷지? 새삼 놀랐다. 키를 재보자며 손을 잡고 방으로 갔는데 표시해놓은 스티커 한장이 없네. 무심했나 싶어서 화이트 보드 앞에 세워 보드마카로 대충 선을 긋고 날짜를 적었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는 당연히 매일 성장하고 있었겠지만 매일 곁에 두는 부모는 알아챌 수가 없다.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말대꾸 기술과 락앤롤 저리가라식의 저항정신의 꾸준한 성장은 그리 체감이 쉬운데 말이다. 자주 입었던 몇몇 옷들이 티나게 짧아지고 작아진 걸 보니 아이의 성장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키는 원래 방학에 쑥쑥 크는거지.
방학기간동안 여러 경험들을 해보고자 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들이 생각나다가도 사진첩에 그간 쌓인 여행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이 많은 것들을 겨울방학에 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중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아이의 기억 속에 들어가 있다면 된거다. 경험상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그것에 쓰인 비용의 크기와 비례하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를지 추후에 한번 확인이 필요하다. 여튼 이번 겨울 많은 것들을 했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공부는 하지 않았다. 이건 뭐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 물론 우리 역시 공부는 시킬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방바닥 긁으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순간순간 현타가 오기도 했다.
우리는 두달간의 겨울방학동안 끈끈하게 붙어다니며 수 많은 대화를 하고 놀리고 웃고 혼내고 혼나며 저 멀리 제주의 봄을 기다렸다. 제주 도착 후 지난주부터 내린 비는 오늘에서야 멈췄다. 이곳 제주도도 기나긴 겨울의 흔적을 씻어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 할 준비를 할 모양이다. 유채꽃은 벌써 만개한다. 곧 벚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