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성윤 Dec 04. 2024

헌법 개정의 적기


1987년 6공화국 출범 이후 수십 년간 한국의 헌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 헌법이 강성헌법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높은 개정 요건이 있다. 여야 간 합의가 없으면 헌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한국 헌법은 대륙법 체계를 기반으로 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는 일본이 독일 헌법을 도입한 뒤,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 헌법학자들이 급하게 만든 제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한국 헌법에 일본 헌법 체계의 흔적을 남겼으며, 의원내각제적인 분권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미국식 대통령제를 도입하였고, 그 결과 대통령 중심제가 정착되었다.


이승만 정부 이후 대통령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군부독재 시기에는 관료제와 결탁하여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행정부와 대통령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지만, 선거 제도의 특성상 많은 사표가 발생하며, 국민 대표성 측면에서 국회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중심제는 단일 권력 구조라는 점에서 효율성을 보일 때도 있지만, 현대 사회와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 특히 권력 집중은 견제와 균형을 저해하고, 집단사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심사숙고와 토론 과정을 통해 정책을 형성하고, 이를 위해 권력의 분산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권력 분산과 유연한 체제 운영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가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즉각 교체가 가능하다. 이는 행정부와 의회의 협력을 유도하며,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대통령의 역할은 국방과 외교 업무에 한정되므로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정치가 의원내각제를 바로 도입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국회의원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의회 중심의 체제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정치인이 엘리트 코스를 통해 전문성을 쌓고, 정치 윤리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장받는다. 한국도 이러한 정치문화의 성숙이 필요하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많은 사표를 발생시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군소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치 개혁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 성숙한 시민의식, 정당 민주화,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정치윤리의 확립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첫걸음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통령제는 당연한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더 적합한 체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의원내각제는 권력 분산, 정책의 유연성, 그리고 행정부와 의회의 협력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에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정치개혁의 첫걸음으로 대통령 중심제의 구조를 재검토할 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