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많은 학자들이 시 창작법에 대해 서술했지만, 사실 이러한 방법론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자는 해석하는 사람이고, 시인은 창조자다. 창조와 해석은 완전히 다른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많은 시인들이 교수직에 오르면 시를 잘 쓰지 못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창조는 신의 능력이다. 이는 인간 고유의 능력 중 하나이며, 모든 사람은 신의 능력을 일부 타고난다. 어린아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고 세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러한 능력은 점차 줄어들고, 기존의 매커니즘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기만 한다. 결국 어른이 되면서 창조자에서 학자로 변하게 된다.
창조력은 복합적인 지식과 경험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어린아이가 창조력이 가장 높더라도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 반면, 어른은 창조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는 이 두 가지 능력의 조화에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어른이 되어서 시를 쓰게 되므로, 창조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시를 잘 쓰는 방법은 동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고유한 능력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학술적인 창조력을 발휘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언어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시적 창조력을 개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애초에 이러한 경우에는 시를 쓰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시를 쓰고 싶다면, 어른의 경우 이미 언어적인 경험은 충분하므로 동심을 잘 개발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능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가 나온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동심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를 즐거움이나 몰입으로 해석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