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and Life Balance
- 일(Work) :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음이 끌리지는 않아도 하는 일
- 삶(Life) : 내 마음이 끌려서 기꺼이 하게 되는 일
한 1~2년 전쯤 유행했던 거로 기억하는 단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서울에서 살 때 이 워라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고 꽤 마음에 들어 했었다. 직업이 내 삶의 모든 걸 대변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닥치는 대로 다 해봤었다.
조금 일찍 퇴근한 후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실컷 놀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워라밸을 이룬 것 같아 보였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걸 이루고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할 줄 알았던 그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목포에 내려온 후 1년이 지난 지금은 드디어 그 워라밸이라는 걸 이루게 된 느낌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을 열거해보면 서울에서 하던 일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는 느낌이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마음 건강 공간 비즈니스 세심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목포에서 서울을 오가며 트레바리 씀-블랙의 파트너도 하고 있다. 가끔 기회가 되면 무대에서 노래도 하고 우연한 기회가 닿아 이제는 독립출판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면서 왜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노는 것’ 그게 워라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한 만큼 놀아야 내 삶이 채워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노는 게 아니라 무언가 내가 조금이라도 노력을 해서 원하는 결과를 이뤄내는 경험을 해야 그런 것들이 채워졌다. 내가 원하던 모습의 ‘나’로 살아가는 삶, 바로 그것을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사실 좀 막연했다. 그래서 부단히 나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실패를 경험한 끝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만족하는지, 올바른 선택이라고 느끼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찾게 된 것 같다.
독서 모임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글을 쓰는 등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끌리는 게 있으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새롭게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의 삶을 다채롭게 채우기 시작했다. 다소 어려워 보이는 일이어도 일단 시도하고 내가 노력해서라도 그것을 하고 싶은 경우 시간을 쪼개서라도 조금씩 도전하고 개선해 결국은 그 일을 해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내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는 묘한 쾌감이랄까.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부분도 큰 몫을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는 관계 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응원해줄 줄 아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며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것저것 벌인 일들이 꽤 많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렇게까지 일로써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 즐겁기 위해 벌이는 일들이고 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잘하기 위해서 경제적인 기반을 잘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제는 알아서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일종의 상승작용이 일어난다고 해야 할까.
참 아이러니하다. 경제적 기반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일에 준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시간을 내서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더 재밌는 건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각자의 세계를 넓혀갈 때 무언가 불꽃이 팍 튀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확장되는 그런 느낌.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어떤 결과물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때 좀 과장하면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은 듯한 느낌까지도 든다.
요즘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각자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을 무척 아낀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걸 거다.
바를 운영하면서 책을 쓰고 책 읽기 모임을 운영하고 강연을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지역에서 문화 콘텐츠 지원사업 같은 것을 하면서 캠핑카를 타고 전국 일주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청년 유니온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자기 일이 바쁘지만, 그 일을 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이트를 얻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니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내 방식대로 계속 살아도 되겠다고 더 잘 살아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믿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고단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들이 경험한 이야기의 행간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고민이 많을 거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또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리라. 나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 그러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순풍을 등에 입고 날아가듯 미끄러지는 요트처럼 인생의 파도에 올라타게 될 기적 같은 때를 맞이할 테니까. 내가 목포에 내려와 맞이했던 그런 순간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