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목포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참 재밌는 일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신이 있다면 참 야속하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안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다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반전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말도 안 되는걸 알지만, 지금처럼만 같았으면,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고 기도하곤 한다.
안 내려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우울의 터널도 단 2주 만에 빠져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참 많이 겪었다. 평소 생일을 안 챙겼었는데 여기서는 한 달 동안 축하를 받기도 했다. 마을 축제에 사물놀이패로 참여해서 거리를 시끄럽게 만들어보기도 했다. 마을 친구들과 함께 낭독극을 하기도 했고 친구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다. 맛있는 밥을 지어 먹고 밤에는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하루하루 이렇게 꽉 찬 느낌으로 살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해야 할 일이 가득한데 그 일들이 모두 지쳐 쓰러지는 일들이 아닌 함께 즐겁고 재밌는 일투성이였다. 그동안 제대로 못 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안 보고 놀고 먹고 쉬었던 것이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래서 서울에서보다 더 많은 일을 재밌게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춘화당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마음 목욕탕 세심사 기획 그리고 유료 독서 모임 트레바리 파트너, 괜찮아마을 음악인들 보컬 등 참 많은 일을 함께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면서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함께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해서 즐겁게 지내면서.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영화제에 배우로 다녀오기도 했다. 괜찮아마을 1기 기간 동안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올랐고 마을 친구들과 함께 전주에서 배우로서 영화제를 즐기기도 했다. 부모님을 초대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드리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어준 쏭(송미), 쏼라(수훈), 승길, 민준 이 네 사람에게 참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감사할 일들이 참 많다. 처음 목포에서 상담을 해주셨던 재열님의 추천으로 마음 건강 관련 행사에 부스 참여도 해보고 강연을 하러 가기도 했었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열심히 살았던 것뿐인데 그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발자취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아주 가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살다 보니까 그런 기회가 왔다. 재열님에게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으로도 세심사를 잘 키워서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고 싶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곳 목포에 남아 친구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나처럼 이곳에 남은 사람들도 있고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 남은 사람 중 몇명(한나, 리오, 일화, 은혜, 진아 씨 등)은 공장공장에 취업을 했다. 광민 씨는 섬 연구소에 취업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민지, 숙현, 희연, 동엽 씨는 채식 식당 ‘최소 한끼’ 를 차렸다. 공장공장 직원이었던 용호는 원래 하고 싶었던 대로 작고 분위기 좋은 위스키 바 ‘목포의 상실’을 열었다. 하우스메이트인 조셉(승훈)은 일러스트를 독학하더니 이제는 아예 ‘디자인 스튜디오 13월’을 차렸다.
떠난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혹은 능력을 잘 살려서 다시 인생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회사에 취업해서 하루바삐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진주 님, 단열이, 수연이)도 있고, 원하던 책방을 차린 자영 씨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친구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소식은 오가며 친구들에게 직접 전해 듣거나 SNS를 통해 접하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다. 자리를 잡은 것 같아도 방황하는 친구들도 있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친구도 있다. 공장공장에서 일하던 연진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던 것들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서울로 돌아갔다. 목포에 공방을 차렸던 종혁이는 이런저런 일들로 방황하다가 서울로 돌아가 취업을 하기로 했다. 능력과 경력이 쌓이고 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 각자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하우스메이트이자 함께 일하고 있는 지웅님도 다시 목포로 돌아와 나와 함께 일을 하셨던 거다. 그리고 요새는 돌아오려고 하는 상천 님과 함께 밥집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상천 님은 돌아가서 억지로 프랜차이즈 식당을 하셨었지만, 이제는 목포로 내려와 빵도 굽고, 식당도 하고 이것저것 하실 생각을 하고 있다. 후선은 다시 돌아와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장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프리다이빙 강사 일을 준비 중이다. 일러스트와 영상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다들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지만, 함께 의지하고 도와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대로 걸어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와도 같다. 결코 순풍만 불어오는 잔잔한 파도만을 만나지 않는다. 때론 암초를 만나기도 하고 험한 폭풍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고 뒤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고 알 수조차 없다.
나는 드디어 폭풍을 헤쳐나와 드디어 순풍을 뒤에 업고 파도를 타는 중이지만 이 순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고민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누군가는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고 또 새롭게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괜찮아진 사람도 있고 괜찮아질 사람도 있다.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할 거고 넘어지기도 하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도 할 거다. 그래도 이곳에서 경험했던 좋은 기억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사람들과의 유대를 믿으며 결국에는 한 발자국을 내디딜 것이다. 한없이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힘을 배워가고 있으니까. 힘들면 기댈 사람들이 바로 옆에도 있고 전국 각지에도 잔뜩 있으니까.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우리가 함께 있고 또 각자의 능력이 있으니 뭐라도 하고 또 그걸 잘 만들어가리라 믿고 나아갈 수밖에. 그렇게 함께 재밌게 쭉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