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OOO

by 김츤츤
목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묶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도록 돕고 있었다. 상상하는 걸 좋아하고 그걸 실행에 옮겨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 일을 벌이고 그걸로 인해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해서라도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그동안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면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해서 뭔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과제 같은 게 있으면 늘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곤 했다. 팀 과제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조장을 했고 의견을 한데 모으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했다. 권력욕이 있거나 주인공 욕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속한 팀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좀 더 멀리 보려고 하고 넓게 보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나는 알고 보니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참 허튼짓을 많이 했다. 일관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 또 그런 길을 걸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어려서는 과학을 좋아했는데 수학이 싫어져서 문과를 갔고, 힘든 재수 끝에 수능 점수에 맞춰서 중어중문학과에 갔다. 중고등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한자였으니 참 아이러니한 선택이었다. 졸업할 때가 되어 다시 고민 끝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고 축구기자로 잠시 커리어를 쌓았다. 지금도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내가 쓴 기사들이 포털에 쭉 나온다.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약간의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힘들었었다. 짧은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는 부모님의 권유로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지금도 왜 그 권유를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기자 일을 하면서 정신력이 나갔던 것과 뭔가 편하고 명예롭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알량한 마음이 한몫을 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엉망진창 시궁창으로 떨어진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 그만두고 쉬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로 살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정말 많이 하고 나니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아이돌 덕질도 시작했고, 건담 프라모델도 조립했고, 혼자 여행도 갔다. 그리고는 코딩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친구들과 창업도 공부하고 결국에는 창업까지 했다. 지원금도 받아보고 사업도 진행해봤다. 그리고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폐업하고 개발자로 취업을 했었다. 그리고는 목포에 내려와서 기획자이자 공간 기획/운영자로 살고 있다.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이것저것 웬만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틀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엄마는 가끔 이런 나를 보고 끈기가 없다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애들은 결국 어떤 것도 잘 하는 게 없어진다고 걱정하신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나중에 정말 그렇게 되면 공무원이나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은 그래도 나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낸 느낌이 든다. 다른 데에서는 내가, 내 능력이 별로 필요가 없었는데 이곳,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것저것 하면서 쌓였던 경험과 능력들을 지금은 다 사용하고 있으니까.


원래 목포에 내려올 때는 뭔가 할 생각이 없었고 그냥 쉬려고만 했다. 그런데 괜찮아마을 프로그램 중에 자유 상상이라고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상상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가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는 하지 않는 정도로 즐기면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것과도 같은 거니까.


괜찮아마을에서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동명의 소설이 원작)에서 봤던 무인 상담소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거였기에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정말로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세심사(洗心士)”라는 마음 건강을 돌보는 참여형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이걸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저 프로그램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재밌게 하자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얘기하며 만든 거였다. 그런데 점점 살을 붙여나가고 실행에 옮겨보니 더 재밌고 또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게 보이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져서 일을 키웠다. 솔직히 이걸로 돈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지원사업에 지원했고 지원하려면 창업을 해야 하니 창업을 했다. 그렇게 세심사는 시작되었고 공간을 계약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제는 사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기획하고 있다. 가끔 타지역 행사에 초대되어 부스 운영을 하기도 하고, 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러면서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 애초에 재미이기 위해 벌인 일이었고 우리가 필요하니까 하자고 했던 일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니까.


그래서 세심사를 하기로 한 사람들에게 맨 처음부터 “부업으로 합시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창업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폐업을 해봤기에 절대로 이걸로는 바로 먹고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 가려면 버틸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우린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커리어에서 경험과 능력치를 쌓아서 더 좋은 기획을 했을 때 더 멋진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괜찮아마을이 끝나고 그다음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 계획이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계획대로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래도 세심사를 운영하려면 목포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서울로 돌아갈까도 고민해봤지만 덩그러니 외딴섬처럼 느껴지던 그곳으로 가기는 싫었다. 세심사 대표를 맡았던 리오 씨는 목포에서 1년 살아보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나도 남겠다고 하고는 집을 구했다.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지만, 딱히 서울에 있어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공장공장에서 고맙게도 계약직 제의를 해주었다. 목포시 청년 인턴 사업의 일환으로 적은 보수였지만 그래도 한두 달 정도는 고민을 더 할 수 있을 만한 기간은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괜찮아마을 마스터플랜 팀장이었다. 괜찮아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동안 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큰 틀을 수립했다. 그리고 괜찮아마을 1기와 2기의 활동과 성과들에 대해 정리도 함께 진행했다.


계약 기간이 마무리되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괜찮아마을 기간 동안 숙소로 이용했던 목포1935 게스트하우스(춘화당)에서 매니저를 구한다는 지원 공고가 났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춘화당은 너무 좋은 기억이 있는 공간이었기에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좀 더 현실적으로 고민해보니 공간을 기획하고 꾸미는 부분에 아주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또 세심사를 장기적으로 잘 끌고 가려면 공간에 대한 이해와 기획, 운영에 대한 노하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확보해야 했다. 나는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번의 기획 회의와 예산안 수립 이후에 고용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사실상 사장의 역할을 하는 매니저로서 거의 창업과도 비슷할 정도로 일도 많이 하고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기획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고, 청소도 하고, 공사도 하고 현장 일도 배웠다. 실제로 발로 뛰면서 공간을 꾸며나갔다. 현재는 개장한 지 몇 개월 안 되었지만, 포털에서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바로 뜰 정도가 되었다.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어쨌든 내가 기획하고 선택한 것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과를 내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이상하리만큼 목포에 내려와서 안 좋았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선택할 때는 그토록 불안했던 것들이 결과적으로 옳았고 좋은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많이 올라가게 되었다.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그 기회를 잘 잡았다는 생각도 있다. 인생의 파도에 휩쓸리기만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파도를 타는 법을 좀 안 것 같다. 좀 유연해졌다고 할까. 예전에는 내가 선택한 것이 틀렸다면 틀린 대로 내버려 뒀다고 하면 요즘은 옳은 선택이 되도록 개선해서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이 되도록 만들어나간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기획자로, 매니저로, 운영자로 거듭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때를 되돌아봤을 때 참 좋았다고, 알고 보니 OOO이 되려고 그랬나보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일은 이 순간을 잘 보내는 것이다. 겪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는 과정이 될 거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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