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동네 친구라는 단어는 생소해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대학교 근처에서 살 때나 중국 유학을 하러 가서 기숙사에서 살 때도 동네 친구라는 말은 쓰지 않고 그저 학교 선후배, 동아리 선후배 정도로 불렀을 뿐이다. 동네 친구라는 그 특유의 친근함과 익숙함,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끈끈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목포에 내려와서는 동네 친구가 생겼다.
목포라는 곳 그리고 특히나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원도심 지역의 장점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거다. 목포역까지도 대체로 걸어서 10분에서 15분, 목포항까지도 대체로 그 정도, 뒷산인 유달산의 노적봉까지도 그 정도가 걸린다. 고만고만한 거리에 친구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사는 거리만 가깝다고 동네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6주 동안 같은 공간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축구도 하고 우린 그렇게 가족, 마을, 공동체를 이뤘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던 사람들은 점점 반가운 사람들이 되었다.
모두 의지할 데가 없는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에 더욱더 서로 의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살 때도 타향살이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왜 그곳에서는 동네 친구가 되지 못했을까.
나는 서울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삶이 팍팍해서 동네 친구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지도 몰랐다. 그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점을 받고 스펙을 쌓아 취업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부모님으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돈과 싸웠다. 월급이 많지 않은데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월세, 관리비, 핸드폰 요금,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많이 없었다. 쓸 돈도 없는데 쓸 시간은 더 없었다. 일은 언제나 많았고 해야 할 일이 적은 날에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계속 쫓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사치같이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와 만나서 논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나마 서울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취업이 되면서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에 머물게 된 친구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만나기 어려웠다. 만나서는 서로 너무 멀어져 버린 상태였기에 나눌 수 있던 이야기는 오로지 돈과 연애 이 두 가지 뿐이었다. 나는 원래도 크게 관심이 없는 부분이었던 주제라서 늘 입을 닫기 일쑤였다.
목포에서의 친구들은 달랐다.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기에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았기에 형편은 여유롭지 못했지만,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셰어하우스를 만들고 요리를 해 먹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며 각자의 삶을 공유했다. 그리고 존중하고 인정했다. 우리의 얼굴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삶의 모습도 다채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주었다.
우리는 각자가 지닌 능력들을 활용해 서로를 채웠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설비를 고쳐주고 가구조립을 도와주었고, 눈썰미가 좋고 공간을 예쁘게 꾸밀 줄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거나 사용하는 공간을 예쁘게 꾸몄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들은 일상 속 아름다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아 예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서로 능력들이 다르다 보니 상호 보완도 가능해서 서로서로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도 가능했다. 서로의 작품을 비교하고 취미가 비슷한 것들을 공유하며 출사를 나가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도 하며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나가는 중이다.
함께 스터디하며 능력을 키우기도 하고 함께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를 하기도 한다. 친구가 이사하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들이를 하러 가기도 하고 휴일에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같이 컴퓨터 게임이나 콘솔 게임을 하기도 한다. 축구 경기를 보며 치맥을 함께하기도 하고 퇴근하고는 친구 차를 함께 타고 맛집을 가거나 볼링을 치고 바다를 보고 야경을 보러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다.
따로 떨어져 지내지만 매일 혹은 하루건너, 자주 얼굴을 마주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일이 생각나면 함께 해나간다. 함께이기에 할까 말까 고민하던 일도 서로의 등을 떠밀어 주기에 실현 가능한 모양새로 만들어가곤 한다. 멕시코 문화에 빠져서 함께 멕시코 맥주를 먹으면서 친구들과 놀면 좋다고 생각했던 걸 직접 파티로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파티로 만들기도 했고, 서로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벼룩시장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실제로 플리마켓을 열어보기도 했다. 빈 곳을 활용해서 팝업 술집을 열어보면 어떨까 해서 하이볼 가게를 열어 동네 사랑방처럼 만들어보기도 했다.
목포에 내려온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많은 것들을 고민했지만 동네 친구들이라는 존재 때문에 빠르게 생각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