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그저 소소한 행위들을 반복할 뿐이었는데 그런 것조차 우린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회색빛의 도시에서 닭장과도 같은 좁은 공간에서 각자의 살 곳을 지탱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말이다. 목포에서 한없이 널브러지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니 내가 왜 어두웠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그 소소한 일상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근차근 착실하게 매 순간에 집중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을 회복해갔다. 순간들이 모여 시간이 되고 그 시간은 내 삶이 되는 거니까.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한옥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아침마다 햇살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곤 했다. 그래서 대체로 7시쯤에는 눈이 떠졌다. 전날 밤에 좀 늦게 자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비슷했다. 아 물론 너무 피곤하면 점심때 잠깐 낮잠을 자곤 했다. 아침마다 알람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서 좋았다. 누군가가 급하게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뇌가 명령을 통해 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몸이 뇌를 깨우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재즈 음악이 들려왔다. 방음이 거의 안되는 한옥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상천 님은 아침마다 거실마루에 오래된 구형 아이패드를 이용해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적당한 음량으로 틀어놓곤 했다. 그리곤 마루에 앉아 햇살을 만끽하고 계셨다.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차례로 그 옆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마당에 놀러 온 새들과 눈 맞춤을 하곤 했다. 마당에 내리는 햇살, 짹짹거리는 새 소리,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 음악.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마루에 앉아 햇살을 만끽하다 보면 출출해지곤 했다. 상천 님은 커피나 차를 끓여주셨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미처 잠이 덜 깬 몸과 뇌를 깨웠다. 뒤따라 일어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간밤엔 무슨 일이 없었는지 그런 별거 아닌 인사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뭐할지 무엇을 할지를 얘기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둘 모여 앉았다. 그렇게 다 일어나면 찬란한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 목포역 뒤 시장(구 청호시장)에 가서 식자재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 명물인 수제 어묵 핫바를 하나 사 먹고 들어오면 참 좋았다. 맛있기도 했고 뭔가 뿌듯하기도 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났을 때의 그 개운함도 좋았다.
‘먹는다’는 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행위, 그런데 그걸 꼼꼼하게 하면 할수록 삶은 단단해진다. 잘 먹기 위해 준비하고, 잘 먹고, 또 다음에 잘 먹기 위해 정리를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잘 거쳐야 한다. 우린 자신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요즘 ‘나’를 잘 먹이는 걸 잊어버리고, 잘 쉬게 하지도 않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랬었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정리하는 이 과정은 회복과 치유이자 자신을 관리하는 연습이 되었다.
‘함께’라는 말이 들어간 행위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하며 맞춰나가야만 하는 일이다. ‘나’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할 줄 아는 마음. 즉, 배려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힘들었던 경험을 하고 목포에 왔던 나에겐 너무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함께 맛있는 밥을 해 먹으면서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회복했고 또 몸도 건강해졌으니까.
춘화당 앞에는 다소 허름해 보이는 창고형 카페가 있었다. 예전에는 식당 혹은 카페로 쓰였던 공간이었는데 운영이 안되다 보니 건물주의 물건들이 정리가 안 된 채 놓여있는 공간이었다. 층고가 높고 어느 정도 넓다 보니 꽤 운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가운데에 천창이 있어 햇살이 쏟아져 채광이 은은하니 좋았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거나 책을 읽곤 했다. 우리는 서로가 어디 있는지 뭘 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카페에 각자 적당히 거리를 띄운 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그렇게. 각자 집중시간을 갖다가 누군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또 모여 앉아 얘기하곤 했다.
카페에는 오래되고 기다란 검은색 가죽 소파가 있었다. 우리는 나른하면 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졸거나 아예 드러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곤 했다. 신기한건 다들 이 소파에 앉으면 쿨쿨 잤다. 요새도 사람들이 놀러와서 이 소파에 누워있는다.
우리가 머물렀던 목포 시내, 원도심이라 불리는 곳의 장점은 동네가 조막만 하다는 것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목포역이 있었고, 10분 정도 걸으면 노적봉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5분 정도 걸으면 항구에 나가 바다를 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좁은 동네다 보니 마을 주민들과도 마주칠 일이 많았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도란도란 걸어가는 다른 생활 모둠 사람들이 보이곤 했다. 밥을 먹으러 가거나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각자 할 일을 하러 이곳 저곳으로 가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우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다가 같이 걸어가기도 하고 다시 헤어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모든 게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웠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나쁜 짓 하고 살면 안 된다고 농담을 해서 실컷 웃기도 했다. 어쨌든 이 동네는 조막만 해서 참 안정감이 느껴지는 동네였다.
목포는 1~2층짜리의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길이 많다. 요즘 한창 힙한 레트로 감성이 묻어있는 간판을 보는 재미도 있고, 형형색색의 천장과 벽들이 주는 오묘한 조화를 보는 것도 재밌다. 야트막한 언덕길과 좁은 골목들이 계속 새로운 풍경을 가져다줘서 걷는 재미, 보는 재미가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담장을 넘어 사람을 구경하는 개도 만날 수 있고 따뜻한 곳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들도 보인다. 풀밭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희한하게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지어진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보니 중정이 그대로 남아있어서라고.
가끔 동네 친구들이 심심하면 공을 들고 운동장에 모인다.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모인 사람들에서 팀을 나누고 실컷 공을 찬다.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주는 친구도 있고, 기본기가 좋아서 패스를 잘 찔러주는 친구도 있다. 축구를 많이 안 해본 친구는 기대하지 않았던 큰 웃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의외의 골 결정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력이 어떻든 함께 모여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인 축구, 함께하기에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목포는 국도 1, 2호선의 종점이기도 하지만 바다로, 섬으로 나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거의 공항처럼 큰 규모의 여객선 터미널에 가보면 갈 수 있는 수많은 섬들이 아주 많은 걸 확인할 수 있다. 가끔 사람들끼리 가까운 섬에 놀러 가곤 한다. 배를 타고 갈 때 갑판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먹이는 일처럼 재밌는 건 없다. 배가 바다를 가로지를 때 만들어내는 파란색 물감 위 하얀색 거품 붓질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외로운 섬에서 잠깐 산책을 하고 과자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동을 주워 나오면 또 하루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라면에 넣어 먹으면 맛있겠다.
입이 험하지만, 가슴은 따뜻한 노잼(지웅)님은 신기한 사람이다. 인천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가시더니 커다란 군용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 군용가방에는 순정만화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이 무슨 반전ㅋㅋㅋ) 그런데 만화가 하나같이 다 재미있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시원한 마루에 누워 만화책을 돌려보곤 했다. 먼저 보는 사람을 재촉해서 빨리 읽고서 달라고 하기도 했다. 입소문이 퍼져나가 다른 숙소 사람들도 놀러 와서 만화를 보곤 했다. 어릴 때는 무협 만화나 애니메이션만 봤었는데 순정만화도 재밌어지다니 나이가 들었나 감수성이 풍부해졌나.
가끔은 모여 앉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축구 경기를 보기도 했다. 마침 아시안게임 축구대회가 있었고 그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함께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건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족들과는 어릴 적에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취향도 다들 달라지고 바쁘다 보니 함께 무언가를 볼 일은 많이 없으니까.
정말 별거 아닌 걸 가지고 우리 모둠은 서로 놀리고 장난치면서 친해졌다. 서로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고 우리끼리만 알아듣는 유행어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유치했고 아이들이 노는 것 같이 행동했다. 하도 우리끼리만 재밌게 놀다 보니 다른 친구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뭔가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과 교류를 할 틈이 사실 없었다. 우리끼리 밥해 먹고 친해지기도 바빴다. 서로 놀리고 웃고 떠들고 우리끼리만 해도 그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으니. 어쨌든 우린 그렇게 돈독하게 지냈고 하루 온종일을 몰려다녔다. 뭔가를 해도 꼭 같이 있고 오죽하면 우리끼리 똑같은 색 후드티도 사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을 춘화당(숙소 이름)이라고 명명하고 가족처럼 지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린 참 남달랐다.
비가 오면 파전을 굽고 막걸리 파티를 하는 것
가끔 동네 친구들을 불러모아 고기 파티를 하는 것
달이 휘영청 뜨면 야경을 보기 위해 노적봉 정상에 오르는 것 (feat. 블루투스 스피커)
밤에 출출하면 컵라면을 끓여 먹고 한입만을 외치는 것
가끔 술이 당기면 각자가 좋아하는 술을 골라잡고 가볍게 한잔하고 잠드는 것
친구의 얼굴이 어두우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것
고민이 있으면 솔직히 얘기하고 조언을 듣는 것
친구에게 사주를 봐달라고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