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건 무엇일까. 서로 아껴주기에도 모자란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아쉬움이 남고 심지어는 싸우게 된다. 옛말에 가족은 전생에 원수란 말이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나는 가족들과 그렇게까지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가족과의 대화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고 내가 상처를 많이 주기도 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줄 거라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 서로 상처를 준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로 포장되는 것들. 가족이니 용서해야 한다는, 이해해야 한다는, 이런 것도 이해 못하느냐는 등 애정을 넘어 애증이 되는 감정들이 휘몰아치곤 한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저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햇살이 좋아서였을까, 잠을 푹 자서였을까 평소와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났다. 마루에 나갔더니 상천 님이 일찌감치 앉아 햇살을 만끽하고 계셨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이미 깨어있었던 지웅 님도 함께 마루에 앉아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간단히 서로 소개를 나눴다. 처음이다 보니 솔직한 듯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갈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상천 님과 수연 님이 코롬방제과의 빵을 사왔다. 모둠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고 난 후 예정되어 있던 상담을 위해 로라로 향했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상담은 좀 놀아본 언니들이라는 분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름과 달리 남자분(장재열 님)도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주도적으로 상담을 진행해주셔서 좀 신기하기도 했다. 아 참, 이분도 여성을 좋아하신다고 하니 오해는 말자.
상담은 이곳에 왜 왔는지, 고민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돌아가면서 얘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상담사였던 재열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울증을 겪고 퇴사를 한 후 시간이 흐른 뒤 상담자가 되었다고 했다. 먼저 진솔하게 얘기를 풀어주셔서 그랬는지 우리 모둠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 그리고 처해있는 상황을 진솔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는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으나 막상 얘기를 시작하니 며칠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남김없이 모두 이야기했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위기를 경험했지만 스스로 이겨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때마다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재열님은 내가 가진 원기를 사채로 끌어 썼던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우울증은 ‘질환’ 즉 방문객이니 스스로 인해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거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고, 모든 게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는 때가, 쉬어가야만 할 때가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재열님도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고 6주 동안 푹 쉬면서 에너지를 채웠으면 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면 괜찮아 보였는데 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었다. 통념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을 추구하다가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부득이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일이 너무 많아 번아웃 당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냥 재밌어 보여서 왔고 고민이 없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고 나니 한결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나니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았다. 아주 많이 그것도 한꺼번에.
상담은 6주 후의 나에게 보내는 질문 혹은 다짐을 담은 편지를 쓰고 마무리되었다. 6주가 끝날 때쯤 다시 상담하게 되어있는데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을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해졌다. 무거웠던 상담 분위기와는 달리 그 시간이 끝나자 발걸음이 가벼웠다. 실컷 감정을 비워냈으니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추천을 받았던 오거리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의 후한 인심이 살아있는 맛깔나는 한정식 한 상이었다. 갈치조림, 파김치 등 상이 가득하게 차려진 반찬과 서비스로 주신 전어까지 참 맛있었다. 주인아저씨의 유쾌한 농담이 어우러져 즐거운 점심이 되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난다고 했는데 오늘 참 많이 난 것 같았다.
우린 숙소로 돌아와서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반장’은 지웅 님, 청소를 주관하는 ‘요정’은 수연 님, 뭐 하고 놀지 고민하는 ‘한량’에는 진주 님, ‘요리사’에는 상천 님, 중요한 정보나 소식을 알려주는 ‘알리미’에는 세솔 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할 ‘기자’는 내가 하게 되었다. 각자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나름대로 역할분배를 잘 한 것 같았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장을 보러 갔다.
모둠 사람들과 함께 마트에 가고 전통시장에도 갔다. 신기한 듯 쳐다보시는 어르신들의 눈길을 받으며 시장을 거닐었다. 참깨를 볶는 오래된 기계도 구경하고 덤으로 기름을 짤 때 나는 고소한 냄새도 맡았다. 필요한 식자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요리했다. 상천 님이 직접 만들어온 수제 베이컨과 진주 님이 가져온 식자재와 조미료를 더해 상천 님은 감자 베이컨 볶음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가만히 식사를 기다리지 않고 뭐라도 하나 도우려 했다.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고, 그 누구도 쉬는 사람 없이 무언가 하나라도 더 도왔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신기하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침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 4강전 대한민국 대 베트남 경기가 있어 함께 보기로 했다. 원래는 노트북으로 소소하게 보려고 했는데 숙소 관리자 용호 씨가 빔프로젝터를 가져와서 큰 화면으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축구를 보면서 나름대로 내가 알고 있는 축구 지식을 바탕으로 약간 장난도 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TV를 본 게 얼마 만인지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된 느낌이었다. 경기는 3-1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틀 뒤 결승전에서도 이렇게 모여서 경기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놀고 방으로 돌아가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우니 참 편안했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이곳이 집으로 느껴지다니. 밥을 지어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아마도 함께 밥을 지어 먹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무언가를 스스로 먹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그런데 어떤 것을 어떻게 해 먹을 것인지, 어떤 것을 사 올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 도시에서 각자 살아갈 때에는 시간이 없어 대충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었는데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신경 쓸게 많았다. 자연스럽게 어떤 취향인지를 물어보게 되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등등 배려하고 도와가며 서로를 위하는 시간이 바로 함께 식사를 해 먹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태고적부터 인간이 해왔던 행위였기에 가장 중요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사냥하고 불 앞에 모여 앉아 식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것들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프로그래밍 되어있었을 수도 있다. 이 소중한 것들을 빡빡했던 도시의 삶 속에서는 하기 힘들었기에 자신을 보듬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아껴주는 것도 못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하루하루 즐거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우연히 괜찮아마을에 모여들었고 숙소를 고르다 보니 어쩌다가 함께 생활하게 되는 우연 중에 우연으로 뭉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식구 그리고 나아가 가족에 가까운 듯 무척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누구 하나 이 무리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굳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공간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누구 하나 농담을 건네면 함께 까르르 웃곤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말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배려하고 존중했기에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믿을 수 있다는, 믿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자 더더욱 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이게 가장 큰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