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300km

by 김츤츤
여행이란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환경에서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여러 면을 마주하게 된다.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지 불쾌함으로 남을지는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여행이 끝났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있을 테니. 시작이 어쨌든 끝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안도감 덕에 나는 이 무거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거무룩한 서울 하늘을 뒤로한 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기찻길을 달려 전라남도의 땅끝 종점 목포역에 도착했다. ‘2시간 30분’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속철도가 다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목포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정말 하다 하다 별걸 다 한다고, 어디까지 떠내려가는지 궁금하다고 자조적인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물론 3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오니 날씨가 바뀌어 있었다. 마치 세기말인 것만 같았던 깜깜한 하늘이 화창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6주간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담은 작은 캐리어를 끌고 집결지인 카페 로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서울의 명동거리를 걷는듯한 느낌의 좁은 골목과 블록들 사이로 파리바게뜨, 올리브영, 메가박스 등 익숙한 브랜드의 간판들이 이곳은 번화가였다고 말하는 증거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한산한 거리는 신기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걸음을 옮길수록 옛날 간판들과 건물임대를 알리는 스티커가 보이는 와중에 로라에 도착했다. 괜찮아 마을에 선발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인사와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한 약간의 대화가 오갔다. 면접 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아쉽게도 나와 함께 면접을 보았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색함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마침 다행히도 숙소 탐방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건물이 드리운 그림자를 찾아다니며 목포의 구도심을 거닐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의 공장공장의 낭만 청년 동우 님이 숙소 탐방 겸 목포 가이드를 해주었다. 목포는 일본인들이 간척하여 만들어진 항구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일본 강점기 때 만들어진 절을 비롯하여 근대화 시기 찬란했던 목포의 경제력을 대변하는 국내 최초의 백화점 건물 등 살아 숨 쉬는 문화재들이 눈길을 붙들었다. 적산가옥, 적군의 재산이었던 가옥들. 그리고 옛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축자재를 덧대어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들. 그래서 좁은 골목을 통해 갑옷처럼 둘러싸인 건물의 외벽을 지나치면 나타나는 옛날 건물들의 모습, 일제강점기 겨울 군복에 들어갈 목화솜을 수탈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창고건물들은 목포의 살아있는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명동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던 길거리와 블록 역시도 일본이 만들었던 도시구획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목포에 옛날 모습만 남아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성수동의 그 이질적인 분위기처럼 이곳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리모델링된 카페 그리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립영화관까지. 아직은 미미하지만 조금씩 변화는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목포의 구도심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기에 숙소는 세 곳 모두 로라를 중심으로 걸어서 5~1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거기에 간척지로 만들어진 지역이다 보니 땅이 편평하여 걷기도 참 좋았다. 숙소는 세 곳 모두 각각 다른 인상을 주었는데 매력이 참 달라서 어디를 가도 재밌게 6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셰어하우스 느낌의 깔끔함과 옥탑방의 낭만이 있던 게스트하우스 등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여관에 젊은 감성을 더해 리모델링해 마치 성수동에 있는 카페처럼 바꾼 우진장, 목포의 관아였고 이제는 가장 예쁜 한옥으로 남아있는 춘화당(목포 1935라는 간판이 붙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그동안 운영하지 않았다고 했다.)까지. 각 숙소의 매력이 너무 달라 어떤 숙소에 묵어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진장의 자유로움과 곳곳에 숨어있는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마음에 들었으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이 주는 조용한 포근함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투어를 마치고 간단한 OT를 하며 앞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 건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들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진행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머리가 하얘졌다. 여유롭게 혹은 담담하게 개성 있게 유쾌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들 속에 차분하게 다행히 소개를 끝마쳤다. 자신의 별명으로 불릴 단어를 고민하다가 “츤츤” 이라고 했다.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을 담은 단어를 생각해볼까 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의 별명인 “밥사”도 나를 잘 설명하는 느낌은 아니어서 그 별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 독서 모임에서 츤데레 느낌이 난다고 했던 평가가 기억나서 생소하지만 저런 별명을 지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도시락을 받아 저녁을 먹었다. 아직은 어색함이 있었던 차에 옆에 앉아있던 분이 말을 걸어왔다. UI/UX를 하는 디자이너라 말이 잘 통했다. 개발 공부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고, 함께 해보자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실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라 목표 의식과 책임감이 생기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한결 편안한 마음이 들었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대망의 숙소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숙소를 종이에 적어냈다. 춘화당에 사람들이 몰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우진장의 경쟁률이 치열했다. 가위바위보와 자발적 이동으로 다들 자신의 숙소를 배정받고 각자 뿔뿔이 숙소로 이동했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은 춘화당 본채에 그리고 옆 건물 별채에도 여섯명 이렇게 총 열두 명이 춘화당에서 지내게 되었다. 간단한 안내 사항이 전달된 후, 우리 모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시간 300km, 생각보다는 짧은 그렇지만 절대 가깝지는 않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달려왔기 때문이었을까 몹시 피곤했다. 그렇게 목포의 첫 번째 밤이 저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