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만 하더라도 그 말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달 내내 머릿속에 ‘회사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대표와 면담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머리는 놀라울정도로 차갑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이 회사에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회사도 나를 데리고 갈 이유가 없다는 게 명확하다는 것. 그렇게 토를 하듯 터져 나온 문장.
“퇴사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32년간 살면서 무언가를 중도에 그만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을까. 아니면 포기에 대한 경멸 때문이었을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경험을 해왔고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그중에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선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요즘 누구나 하는 퇴사 한 번 했다고 유난 떠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내린 중요한 결정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내린 첫 번째 선택.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섣불리 취업을 선택했던 것도 문제였는데 더 큰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던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인제 와서 든 생각이지만 나는 회사와 서비스의 가치와 비전이 이해되고 공감하고 빠질 수 있다고 느껴야만 몰두를 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야 지겨워하지 않고 힘든 것도 이겨내면서 성장을 할 수 있을 테니.
주어진 환경도 좋지 않았다. 선임은 내가 취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회사를 나가버렸다. 추가로 개발자가 영입되었지만, 기존에 짜여있던 코드들은 난잡하기 그지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었고 우리를 보조해줄 인력지원도 없었다. 내가 실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해보았지만, 그 실력이 있었다면 이곳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과생으로서 웹 개발을 하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나였고 더군다나 개발을 열심히 공부해야 했을 때에 창업팀을 꾸리게 되면서 개발보다는 기획에 몰두하기도 했었으니.
생각해보니 입사할 때에 내 실력을 검증하는 테스트도 없이 회사에 들어왔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대체 어떤 면을 보고 나를 뽑았던 거느냔 의문이 생긴다. 그냥 적당히 착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안면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 말랑한 채용 덕분에 나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그 쓰라림을 유예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 쓰라림은 일을 하는 내내 따라다녔는데도 무언가 일을 하고 있고 돈을 벌고 있다는 그 알량한 자기 위로 감으로 인해 멀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늘지 않는 임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목표, 체계가 없는 업무 프로세스, 그리고 배울 점이 없는 동료들은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회사의 성장, 개인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일상은 점점 나에게서 웃음을 잃게 했다. 직장동료들과의 관심사가 다른 점도 한몫을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다 보니 회사에서 말 수는 점점 줄어갔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회사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보니 회사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일상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자극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 나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기도 했다. 모임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갈증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내가 살아온 역사, 그로 인해 만들어진 (하지만 피하고 싶은) 현실과 감정들을 마주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으면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담당 업무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내 능력이 탐탁지 않았고 동료들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도 새로운 업무를 통해 내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 분명히 내 능력을 발휘할만한 업무였으나 이미 지쳐버린 마음은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나를 지치게 만든 회사를 위해 나를, 나의 능력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버티고만 있었다. ‘회사 가기 싫다.’라는 말을 되뇌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바뀌지 않고 점점 악화하는 상황 속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었기에 마음에 관련된 책을 보며 이상한 걸 느끼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진 채 인터넷에 있던 간이 심리테스트를 해보고 나서야 내가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무언가 변화를 꾀하기도 두려웠다. 바로 그런 심리상태였다.
그래서 그날, 내가 퇴사를 얘기하게 될 줄 몰랐다. 대표에게 힘들다고 면담을 신청했던 그 날, 담담히 내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당황스러울 만큼 참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의 상황과 왜 힘들어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괴로움,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더는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동안의 고민이 정리된 내용이 터져 나온 후 터져 나온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퇴사’
대표는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우선은 남아있던 휴가를 쓰며 생각을 다시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결정을 굳힌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