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려 누운 내 모습을 선인장으로 바꾸어 그렸다.

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만들게 된 이야기 01

by 다예

2023년 7월, 오랜만에 참가하는 큰 페어를 앞두고 후루룩 쓰고 그려 만들었던 나의 첫 번째 책.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내 3n년 인생 전반을 돌아봤을 때 정말 잘 들어맞는 말이다.


발간한 지 벌써 2년이 지난 지금, 책 내용을 다시 펼쳐 보며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의미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덜컥 작가 승인이 나고, 부랴부랴 저장해 둔 글을 수정했다.

매주 목요일, 서툴지만 착실히 연재해 보려고 한다.

우연히 읽은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작은 힌트가 되거나,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2023년 7월 열린 서울일러스트페어 부스R09

이 책의 내용은, 2016년 대학 졸업 과제로 작업한 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캐릭터로 지금까지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나름 솔직하게 서술하고, 그에 맞춰 그림을 그려 엮은 것이다.

페어 특성상 다행히 많은 분들이 구매해 주셔서 제작비 정도는 겨우 회수했지만, 직접 만든 매우 어설픈 책이라 발간 자체에 의미가 있을 뿐, 어떤 확장성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1년 반 후, 이 책을 통해 내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게 된 한 기획자분께서 국내 라이선싱 사업을 제안해 오셨고, 제품 기획 전반에 걸쳐 책 내용을 최대한 담아 출시해 주셨다. 덕분에 이 엉성한 책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책이 되었다.




책의 목차는 총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중 <01. 자격지심과 질투심이 돋아난 선인장>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뤄볼 예정이다.

목차는 순서에 따라, ‘웅크린선인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의 내 모습, 그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 그 인형으로 인해 시작된 사업가로서의 길, 그리고 이 캐릭터를 통해 내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등을 담고 있다.

책을 구매해 주신 분들을 배려해 전체 내용을 업로드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에 덧붙여 나의 생각과 일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때의 상황을 좀 덧붙이자면, 대학 4년 내내 들어온 어떤 수업이나 전공과도 관계없이, 졸업 작품으로 느닷없이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다.


입시 때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아 미대를 지원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전공’을 무엇으로 할지는 크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입시 학원에서는 각 과에서 어떤 수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성적에 맞는 학교와 학과 중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솔직히 그때의 나도 '산업디자인'이라는 명칭이 멋져 보여 산디과를 지원했었고, 합격한 학교들 중 우리 학교를 선택했는데, 전공의 정식 명칭은 패션·산업디자인과였다.

입학 당시에는 패션디자인과 산업디자인 수업을 각각 배우다가 중간에 전공을 선택하는 학부형 시스템이었지만, 재학 중 패션디자인과로 통폐합되었고, 차차 축소되던 산업디자인 관련 수업은 3학년 즈음에 거의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학과 변동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교를 등한시할 부적절하고 어리석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고, 그렇게 유야무야 학교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패션과로 바뀐 상황에서 졸업을 하려면 옷 네 벌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옷을 만든다는 건 내게 너무 어렵고, 흥미도 없는 일이었다.
재학 중에도 필수 전공 외에는 관련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는데, 오직 졸업장을 위해 네 벌의 옷을 만들어야 한다니….


그 당시 나처럼 패션과 무관한 진로를 희망하던 선배들(군 복무 후 복학하니 학과가 패션과로 바뀌어 있었던 분들)과 동기들이 교수님께 건의했고, 결국 옷 두 벌과 패션과 무관한 작업물 두 가지도 졸업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건의로 신설된 수업에서, 4학년 1학기에 처음 만난 초빙 교수님이 캐릭터 개발 수업을 맡게 되었고, 나는 그 수업을 통해 난생 처음으로 캐릭터 개발을 위한 아주 엉성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그랬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었지만(세상에 그 누가 정말로 쓸모없는 인간이겠는가), 남 탓, 세상 탓만 하던 — 말 그대로 루저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재학 중 학과가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어떤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편입하거나 자퇴했고, 또 어떤 학생들은 전과를 하기도 했다.
그 상황이 싫었다면 나 역시 바꿔보려는 시도라도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못나디 못난 사람이었다.


툴툴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는,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그저 그렇게 한심한 채로 4학년 졸업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로 나갈 아무런 준비도 안 된 내 모습을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거나, 주변을 질투하기만 하는 못난 모습.
그때의 강렬한 열패감과 좌절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열등감, 나의 가장 지질한 부분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웅장(웅크린선인장)’이다.




그런 내 모습이 마치 선인장처럼 느껴졌고, 웅크려 누운 내 모습을 선인장으로 바꾸어 그렸다. 그날의 낙서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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