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만들게 된 이야기 02
어설펐던 첫 아이디어 스케치 이후, 외형을 다듬어 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의 원형 이미지를 만들었다.
온몸에는 가시가 돋친 짙은 녹색 선인장, 머리 왼쪽에는 노란색 봉오리가 달려 있는 모양새였다.
최종 디자인을 채택하기 직전까지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는데,
처음엔 봉오리가 아닌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꽃이 피어날 ‘가능성’을 의미하는 봉오리로 바뀐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1화에서 이야기했듯, 과 특성상 졸업 전시회는 패션쇼 형태로 열릴 예정이었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장소 한편에, 패션과 무관한 졸업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작게 따로 마련됐다.
장소만 상상해봐도 알 수 있듯, 졸업 전시의 메인은 패션쇼였기 때문에 2벌의 옷 외에도 작품을 런웨이에 올릴 수 있도록 하라는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에 머무르지 않고, 캐릭터 이미지를 실물로 구현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학과 특성상, 어설프게나마 재봉틀이 심리적·물리적으로 가까운 수단이라 봉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4년 동안 두 번 정도 옷 만드는 수업을 들었지만, 동기의 도움 없이는 간단한 나시 하나도 만들지 못했던 내가 입체 패턴 특히, 웅크리고 있는 인형을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름대로 고심해 인형 패턴을 만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때도 적용된다.
재봉틀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는 집에 가지 못하고 밤새 과실에서 봉제를 했던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여름 방학 중이던 엄마가 학교로 데리러 오셨다가 내가 만들고 있던 인형을 보게 되었다.
“네가 그린 그림이랑 너무 다른 거 아냐?”
엄마는 인형을 보자마자 크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민망하지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 엄마가 물었다.
“그 방파제 쿠션은 너무 예쁘게 잘 만들어졌던데?”
출발하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던 엄마는 다른 과실에서 한 선배의 졸업 작품을 보신 모양이었다.
“아, 그건 봉제 공장에 샘플링 맡겨서 만든 거야. 그거 돈 많이 들어. 난 졸업 작품에 돈 쓰기 싫어서.”
실물로 구현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봉제 공장에 샘플비를 주고 맡기기도 했지만, 졸업 전시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너도 인형 샘플링 맡겨봐! 그런 건 얼마나 하는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며 엄마가 물었다.
돈 쓰기 싫다고 말했지만, 사실 얼마나 드는지는 궁금해 알아봤던 나는 곧장 대답했다.
“못해도 한 오십만 원은 들 거야. 근데 그렇게 큰돈 쓰기 싫어.”
대학생에게는 억만금 같은 돈이었고, 이미 졸업 전시를 위한 공금도, 대학등록금도 모두 엄마가 대주고 있던 상황이었다.(나중에 아주 일부 갚았지만)
게다가 현실적으로 졸업 전시회가 끝나면 방구석 어딘가에 박혀 있다가 결국엔 버려질 솜뭉치에 50만 원은 아무래도 너무 아까운 돈이었다.
“엄마가 대줄게!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엄마의 말을 듣곤 가슴이 쿵쾅거렸다.
엄마의 돈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은 마음 뒤에는, 내심 제대로 된 실물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진짜? 나 그럼 알아본다?”
곧장 차 안에서 몇 군데 봉제공장을 검색해 전화해 보았다.
여러 공장 중, 조만간 있을 졸업 전시 도록을 위한 촬영 스케줄이 빠듯했는데, 그 일정에 맞춰 제작해 줄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부천에 있는 공장이었다.
그 길로 엄마는 핸들을 부천 방향으로 돌렸고, 그날 바로 공장에 다녀왔다.
여자 사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견적은 50만 원.
그날 그 자리에서 먼저 어떤 캐릭터인지 이미지를 보여드리며 설명했다.
엉성하게나마 내가 만든 인형의 사진도 함께 보여드렸다.
내가 사용했던 원단(꽤 단가가 나가는 녹색 캐시미어로, 직접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떼어다 썼었다)을 소포로 보내드려야 해서 이야기를 마치고 서둘러 공장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1차 샘플이 나왔다는 연락과 함께 사진 몇 장을 받았다.
다음 화에 계속
최근에도 가끔 엄마와 그날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선배의 방파제를 엄마가 우연히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엄마의 무한한 서포트가 없었다면?... 아 이건 ‘만약’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어 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걸 돈을 이유로 못하게 한 적은 없던 것 같다. 엄마는 평생 나를 그렇게 서포트해 주었다.
아무튼 온전히 엄마 덕분에, ‘웅크린선인장’ 인형이 하나 만들어졌다.
아니, 탄생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