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서 작가이자 사업가로

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만들게 된 이야기 03

by 다예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내가, 그저 돈만 지불하면 만들 수 있을 줄로 쉽게만 생각했던 인형 샘플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사장님과 분명히 소통이 다 된 줄로 알았는데, 1차 샘플이라며 보내오신 사진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1차 샘플

구두로만 이야기해서는 소통이 될 리 없다는 걸, 그때 몸소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 내가 만들고 싶은 그것을 보다 명확하고 상세히 작성해 보내드려야 했다.

공장 사장님께 부랴부랴, 학교에서 어설프게 배웠던 작업 지시서를 작성해 보내드렸다.


학교를 다니며, 학과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학교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내 방황의 이유로 당시 아팠던 아빠와 패션과로 통폐합된 학교를 내세우며, 얼마나 한심한 나날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웅크린 내 모습을 아이디어 스케치했던 그때부터—

아니, 입학 후 첫 수업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학교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괜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졸업하더라도 패션과 관련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필수로 배워야 할 패션 수업에서도 늘 두 발짝 물러서 있곤 했는데…
졸업도 전에 패션 수업에서 배웠던, 작업 지시서를 바로 써먹게 될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얼마 후 2차 샘플 사진을 받았다.


2차 샘플

보내드린 작업 지시서를 토대로 수정한 2차 샘플은, 충격과 공포였던 1차 샘플보다는 모양이 좀 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이상한 모습이었다.


사진에 내가 원하는 모양이 어떤 건지 빨간 선으로 표시해 빠르게 회신했다. 샘플 사진을 받자마자 거의 곧바로 답장을 보낼 정도로 마음이 급했던 이유는, 며칠 후 졸업 전시 도록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업 전시(패션쇼)는 하루면 끝나지만, 도록은 책자로 평생 남기도하고, 나의 빈약한 포트폴리오의 유일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록 촬영을 기준으로 인형 제작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정이 너무 빠듯했다. 촉박하게 2차 샘플에서 한 차례 더 수정을 거쳐 모양을 다듬었지만, 머리 형태나 봉오리 크기는 여전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결국 인형을 완성하지 못한 채 촬영일이 다가왔다.

외형뿐 아니라 눈코입 ‘ㅇㅗㅇ’ 부분도 원래는 디지털 자수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반복된 수정으로 일정도 많이 지연됐고, 외형이 완성돼야 재단 후 자수 작업을 할 수 있었기에 결국 눈코입도 임시로 부직포를 붙여 보내주셨다.

완성이 덜 된 채로 촬영 직전에 받았던 인형
단국대학교 패션산업디자인과 제 13회 졸업 도록 촬영

당시엔 도록 촬영에 최종 샘플을 가져가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나름대로 하나의 뒷 이야기가 되어 특별하게 느껴지고, 어설펐기에 오히려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촬영 이후 또 한 차례 수정을 거쳐, 마침내 웅장이 인형이 완성됐다.

지금의 웅크린선인장을 있게 해 준, 웅장이 인형의 원형(原型)이자 처음으로 제대로 만들어진 실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50만 원짜리 인형이라니.


그대로 방치하기엔 샘플링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과 내가 만든 캐릭터라는 애정이 뒤섞여, 인형이 완성된 후로는 외출마다 인형을 들고 다니며 카페나 식당 등에서 사진을 찍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지인들만 팔로우하고 있던, 100명 남짓한 계정.

그저 내 일상을 공유하는 계정이었고, 사진들 속에 웅장이가 있을 뿐이었기에 이 사진들이 어떻게 퍼져 나갈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당연히 어떤 기대도 없었다.

KakaoTalk_20250806_134430656.jpg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어떤 사람이 내가 올렸던 웅장 인형 사진을 아무런 태그나 언급도 없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사진이 도용됐다는 사실에 당혹스럽고 화가 나 당장 내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었기에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KakaoTalk_20250806_134430656_01.jpg

그런데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연락하기도 전에 그분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페이스북에도 같은 게시글을 올렸는데, 페이스북 게시글 반응이 그야말로 터졌다는 것.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 인형을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다며, 게시글에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태그 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올리신 분도, 나도 얼떨떨한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부터 인형 구매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몇십 건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수없이 알림이 울렸다.


100명 남짓이던 팔로워는 순식간에 1,000명을 넘더니, 어느새 8,000명을 넘어섰다.

나는 가장 먼저 공장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샘플로 만들었던 인형을 실제로 제작할 수 있는지, 제작 단가는 어느 정도인지 문의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이라고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한심한 졸업반의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캐릭터 작가이자 사업가가 된, 100번 이야기해도 100번 소름 돋는, 나의 인생을 180도 뒤바꾼 2016년 9월 29일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창업 이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인터뷰어들이 가장 흥미롭게 들어주시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또 모를 일.


그래서 더 재미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난생처음 온몸으로 체감했던 날이자,
‘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그리는 작가로, 그리고 그 캐릭터의 상품을 만들고 파는 사업가로서의 포문을 열었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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