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웅크린선인장을 만들게 된 이야기 04
관심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그날,
‘아, 내가 이걸로 돈을 좀 벌 수 있겠다’ 거나
‘앞으로 나는 캐릭터 웅크린 선인장의 작가이자 디자이너로 살 거야’ 같은
의지나 계획을 갖고 뭔가를 했다기보다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듯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공장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인형 판매 단가와 MOQ(최소 주문 수량)를 문의했다.
그 당시 나는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슈퍼끼어로 시즌 3>에 선정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판교로 수업을 들으러 가곤 했는데, 거기서 창작자이자 창업자로서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 제작 단가를 토대로 판매가를 어떻게 책정하는 등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과 저작권 등록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성북구에 살면서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성북 세무서.
그곳에 잔뜩 긴장한 채 사업자등록 신청을 하러 갔고, 의외로 허무할 만큼 간단하게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사업자등록증은 그렇게 해결했고,
저작권 등록과 상표 등록을 서둘러 똘똘하게 마칠 수 있었던 계기는 한 통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수많은 구매 문의가 오던 중, 단 한 사람— 자신을 어떤 캐릭터 작가의 지인이라 소개하며, 내 캐릭터가 그 작가의 작품을 베낀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는 이가 있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만, 혹시나 있을 오해를 풀고 싶어 최대한 정중하게, 이 캐릭터를 만들게 된 나의 이야기를 상세히 적어 보냈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떻게 캐릭터를 개발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 사건 이후, 주변에서는 그 사람이 했던 여러 말 중 “저작권 등록은 했느냐”는 질문을 짚으며,
이런 식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캐릭터인지 먼저 확인한 뒤, 저작권이나 상표를 선점해 권리를 빼앗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빨리 등록을 마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바로 그날, 나는 곧장 변리사를 찾아 상표와 디자인 등록까지 마쳤다.
나는 언제나 엉성하더라도, 속도만큼은 빠른 편이다.
가장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후,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주문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판매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겐 별도의 사이트를 만들 시간도, 그럴 능력도 없었다.
<슈퍼 끼어로>를 통해 알게 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이용해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텀블벅 자체가 아직 낯설고 생소한 채널이었기에 유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고민 끝에,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통해 300개 한정 수량으로만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예정된 주문 오픈 시간은 2016년 10월 6일 오후 7시.
솔직히 구매 문의를 했던 분들 중 소수만 실제 구매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7시가 되자마자 준비된 300개 수량을 훌쩍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순서대로 300명을 선별하기 위해 그날 밤을 새워 DM을 하나하나 확인했고,
주문이 확정된 분들께는 메시지에 하트를 눌러드리는 방식으로 아주 엉성하게 첫 주문을 마감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300개 한정 수량’과 ‘주문 실패’라는 경험은 오히려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고, 곧바로 다음 주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런 쪽엔 정말 문외한이어서 전혀 몰랐지만, 당시에는 블로그를 통해 ‘공구(공동구매)’ 형식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 마켓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던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나를 믿고, 한 달이나 뒤에 받을 물건을 선뜻 구매하는지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들어, 더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채택한 판매 시스템 특성상,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출고해야 했기에
밤을 새워 검수하고 포장하는 일이 잦았다.
사실 그 인형을 미친 듯이 출고하던 시기, 아빠는 유난히 더 아프셨고,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입원하시기도 했다. 나로선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최악의 무기력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이 인형을 기다리고 있을 많은 분들을 생각했다.
혹시라도 일정이 어긋나 배송이 늦어지면 ‘사기를 당한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실까봐
아니면, 믿고 구매해주신 마음에 조금이라도 실망을 드릴까 봐 (혹여 일정이 틀어졌더라도 안 그러셨겠지만, 나는 가끔 너무 FM이라) 감정은 잠시 미뤄두고 고지했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혼자서 버거운 날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 희준이, 그리고 항상 제일 먼저 발벗고 나서주시는 엄마의 손을 빌려 함께 밤 새워 포장 작업을 햇다.
막상 받아보시고 실망하시진 않을까 싶어,
택배 박스의 테이핑 하나까지도 신경 쓰던 초보 사장의 2016년 하반기.
10월 초 첫 주문 이후, 배송, 주문, 또 배송. 그리고 다시 주문, 또 배송.
폭풍 같은 시간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 사이 나는 졸업했다.
이제 정말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작가이자 사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한 나날들이었는데, 그 감사함을 온전히 누리지도 못한 채
그저 정신없이 지나쳐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