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해보자 <상>

2017년 상반기

by 다예

1년만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랬다.


얼떨결에 주어진 이 상황이, 주어졌을 때처럼 얼떨결에 사라질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래서 일단은 1년만, 1년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렇게 시작된 2017년

DM으로 첫 주문을 받은 후, 2017년에도 나는 여전히 인형을 만들고 팔았다.

가방에 걸 수 있는, 일명 큐방 사이즈의 작은 인형부터 100cm에 달하는 대형 인형까지, 크기를 다양하게 제작했다.

본래 기준이 되는 인형에서 사이즈를 줄이거나 늘리는 일은 쉬울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역시 쉽지 않았다. 큐방 인형은 일단 5,000개 정도는 만들어야 판매가를 맞출 수 있었다. 가격 문제뿐 아니라 제작 측면에서도, 최소 주문 수량(MOQ)이 5,000개가 된 셈이었다. 그간 300개 정도만 만들어 리오더 하던 것과 비교하면, 나름대로 사업 확장성이 생겼다.

홍대 생활창작가게 key

인형을 다양하게 제작하면서 온·오프라인 입점 기회도 생겨났다.

먼저, 2016년 슈퍼끼어로 행사에 참여했을 때 인연을 맺은 신 국장님 덕분에 홍대 생활창작가게 Key 1호점 쇼윈도 전시와 입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 SNS를 통해 인형을 접한 1300K, 10X10, 옥션 등의 MD님들이 직접 입점을 제안해 주셨고, 이를 계기로 온라인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 자랑을 보태자면, 영광스럽게도 모든 사이트에서 메인 화면에 소개되며 판매를 시작했다.)

여성공예센터 아리움

인형 종류가 다양해지고, 입점처도 하나둘 생기면서 자연스레 작업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5,000개가량 제작한 큐방 인형이나 100cm짜리 대형 인형 재고는 이제 더이상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어영부영 집에서만 작업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 무렵, 마침 신국장님께서 새로 문을 열 예정인 여성공예센터 아리움 입주 신청을 제안해 주셨다.

신국장님은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셨는데, 하필 추천해 주신 공간이 우리 집에서 차로 불과 5분 거리인 곳이었다. ‘이건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정말 거짓말처럼 술술 풀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온몸으로 실감했다.

이케아에서 책상과 선반을 사 와 첫 작업실을 꾸몄다.

자취도 한 번 해본적 없던 터라 얼마나 설레이던지.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라 월세는 10만 원 남짓으로 저렴했다.


적절한 시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제대로 된 사무실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공간에서 처음 도모했던 일은 바로 난생처음 참가하는 두 번의 페어에 관한 것이었다.

2017 아트토이컬처
2017년 아트토이컬쳐

첫 번째 페어는 2017년 아트토이컬처였다.
대학생 시절, 과실에서 나눠준 초대권으로 구경만 했던 그 행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부스의 주인이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당시 많은 도움과 조언을 아낌없이 주던 친한 동생 덕분에 정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큰 힘을 얻어 무사히 준비를 마치고 페어를 끝낼 수 있었다.

고맙게도 웅크린선인장 부스는 꽤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캐릭터라는 신선함과 정성스레 꾸민 부스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트토이컬처 스태프들의 도움이 컸다. 부스를 정식 오픈하기 전, 몇몇 스태프들이 웅장 인형을 구매해 목걸이에 달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금세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번졌다. 행사장 곳곳에서 웅장 인형을 매단 스태프들이 보이자,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의 시선도 내 부스로 향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난생 처음 참여한 페어였던 아트토이컬처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수익과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캐릭터페어2017

이어 참여한 캐릭터페어 2017은 B2B 성격이 강한 행사였다. 여러 기업 담당자와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 미팅을 가졌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숙한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업계 프로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2016년 가을, 소비자들의 요청으로 시작한 작은 사업은 이제 해외 바이어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기회가 확장되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동시에 눈부신 앞날을 꿈꾸던 시기였다. 그렇게 “1년만 해보자”던 다짐의 절반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2025년의 당시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웅장이를 만들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새삼 더 진하게 와닿는다.

그때의 감사함을 과연 내가 충분히 전했을까?
아차 싶은 마음에 타이핑을 멈추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그때의 인연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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