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하반기
인생 첫 페어를 나갔던 2017년 상반기.
두 페어 사이에 사실은 아빠가 돌아가셨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자세히 담진 않겠지만, 아빠는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부터 아프기 시작하신 뒤 6년여 만에 돌아가셨다.
5월 아트토이컬쳐 이후 예정되어 있던 7월 캐릭터페어 준비 기간 중에 아빠가 돌아가신 건데, 참가를 취소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지만 이미 취소 신청 기간은 지나 있었고, 지불한 부스비도 아까워 꾸역꾸역 준비를 이어 갔고 어영부영 마무리했다.
저마다 슬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당시 나는 그냥… 튀어나오는 대부분의 감정을 참아 냈던 것 같다.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빠를 애도하고 슬퍼하기보다는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울음을 명치 아래로 눌러 삼켰다. 실제로 나는 장례식 내내 조문객 앞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마음만 가득 안고 그해 여름을 버텼다.
‘1년만 해보자’ 던 다짐은 2017년 하반기, 아빠의 장례를 지나며 조금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있던 나는 마음을 대강 추스르고, ‘그저 할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100cm 인형 펀딩을 진행해 첫 텀블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 기억과 사진첩을 비교해 가며 그때의 일들을 되짚어보니, 2017년 하반기의 나는 뭐랄까… 굉장히 성공한 여느 아티스트처럼 생활했던 것 같다.
일단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아 시간이 자유로웠고, 갑자기 차도 생겼다. 목돈이 한 번씩 들어오고, 달에 한 번씩 입점처로부터 정산을 받으니 돈도 여유로웠다. 그러니 차를 타고 이곳저곳,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겉보기엔 자유롭게 여행하며 작업하고, 간헐적으로 굿즈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여유로운 모습.
하루의 단편만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이어 붙여보면 당시 내 삶은 꽤나 그렇게 보인다.
실제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그런 여유로움보다는 그 이면에 고갈되어 바닥나 있던 내 에너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 시기를 지나왔기에 지금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만약 그때도 지금처럼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낯선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내 콘텐츠를 더 공격적으로 키웠어야 하는 시기였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 그대로 방전이 되버린 그때의 나는 진취적인 생각이나 미래를 향하는 행동보다는, 그냥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 같다.
가열찼던 상반기와 달리, 그렇게 어영부영 겨울이 찾아왔다.
2017년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고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웅크린선인장 얼굴을 모티브로 한 핸드폰 케이스를 디자인해 판매했다. 이어 서브 캐릭터인 ‘웅크린바나나’를 만들어 인형 샘플링에도 들어갔다.
웅바나 샘플링을 마치자마자, 뚱장 인형(웅크린선인장 100cm 인형) 펀딩에 이어 두 번째로 웅바나 인형 펀딩을 진행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또 한 번 좋은 결과를 만들며 2017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웅바나 펀딩.
그때는 펀딩이 잘된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만들었던 웅바나가 웅장이의 서브 캐릭터가 되어 두 캐릭터의 작가로 9년째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방어적으로 겨우 이어 나가던 작업 속에서도 또 하나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셈이다. 아빠가 하늘에서 날 응원해 준 걸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괜히 그렇게 믿어보고 싶을 만큼 그 시기에는 하는 일마다 잘 풀렸던 것 같다.
머리와 가슴이 텅 빈 듯했던 시기에도, 어떻게든 새로운 무언가를 고안하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던 나의 덤덤함. 그리고 웅장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그때의 팬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결국 웅장이를 통해 다시 움직일 수 있었던 시간으로 가득했던, ‘1년만 해보자’고 불안을 누르며 다짐했던 2017년. 그렇게 굴곡 많고, 참 울퉁불퉁했던 1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