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의 존재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by 다예

2016년 가을, 웅크린선인장 인형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그날 밤.
나는 그날 밤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9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웅크린선인장을 그리고,
‘웅크린선인장’이라는 간판이 걸린 내 작고 소중한 가게에 출근하고 있다.


그 하루만의, 혹은 한동안의 이벤트가 아닌,
그 날이후 인생의 3분의 1 가까이를 함께하게 된 웅크린선인장.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얼떨결에 시작한 사업을, ‘학생’ 신분으로 임할 때와 엄연한 ‘사회인’으로 임하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 차이였다. 고작 3개월 사이에 떼어진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달콤한 것이었다.


그날 밤의 포스팅으로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나는, 솔직히 내 시작이 온전히 ‘운’이었음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쟁취해 낸 것이 아닌, 우연한 사고처럼 시작된 캐릭터 웅크린선인장 ‘작가’로서의 하루들.


그 하루들은 여러 이유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네 것을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같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니!”
“작가님으로 불리고, 돈을 많이 버는 멋진 직업 아냐?”


대부분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어린 나이에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 살면서 대학 때 잠깐 말곤 아침 일찍 일어나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릴 적 꿈꾸던 그림 그리는 삶,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내 인생에 대한 만족감도 큰 편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시작된 웅크린선인장 작가이자 캐릭터 사업가로서의 삶은,
돌아보면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꽃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저 주어진 기회니 즐길 대로 즐겨보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내 성격상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고

내 손에 얼떨결에 주어진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실력이 탄로 날까 자주 불안했고, 그럴 때마다 나를 다그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나를 다그치니 결과물이 빠르게 나오기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가파르게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이대로라면 그대로 나가떨어져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를 열심히 다그치다, 다행히도 아주 나가떨어지기 직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니는데,
‘지금 내가 나에게 하는 이 말과 행동들을 상사가 나에게 한다면?’

이건 명백히 직장 내 괴롭힘이다.
설령 쿨한 결과물을 뽑아낸다 해도 그 상사는 나쁜 인간이다.

그 질문과 동시에 결론이 머릿속에 명확히 내려졌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안아주고 싶었졌다.



작업하며, 솔직히 웅장이는 견디기 힘든 무게의 왕관처럼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내 실력이나 역량이 이 캐릭터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참 많이 괴롭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웅크린선인장 작가로 남아
작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건,
웅장이라는 존재가 내게는 기적과 같기 때문이다.






2019년, 기업은행 사보 인터뷰를 앞두고 사전 질문지를 보며

미리 답변을 준비하던 중, 다른 질문들과는 달리

어떤 대답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웅장이는 내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때 우연히, 보지 않아도 늘 켜져 있던 TV에서 한 드라마 대사가 흘러나와 귀에 박혔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웅장이가 그때 나에게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나에게, 빛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 건 웅장이었다.


덕분에 나는 온몸에 가시가 돋은 선인장처럼 방 한구석에서 웅크려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웅장이는, 그 대사대로라면 신이 내게 잠시 머물다 간 순간임이 분명하다.

그 인터뷰 이후로도 나는 웅장이를 그렇게 소개하곤 한다.


감당하기 힘든 왕관 같은 웅장이가 밉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이는 내게, 기적 같은 존재임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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