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치즈와 구더기, 제목만으로 관심이 확 가서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책이다.
계속해서 소설만 읽는 것은 아닌가 싶어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을 때군! 싶어서 집어 들었다.
우선 이 책을 통해서 미시 역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 권력자의 자취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과거에 나와 같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알기 어렵다.
그러한 내용들을 다루는 것이 바로 미시 역사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16세기의 이탈리아의 민중들에게 퍼져있는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당시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얼마나 크나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만큼 당연히 민중들에게도 기독교, 하느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맹신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를 살았던 방앗간 주인(그 외에도 여러 직업을 가졌었지만)인 평범한 남자,
메노키오(도메니코 스칸델라)를 살펴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에 따르면 하느님이라 세상을 창조하고
천사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도우며 처녀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를 세상에 보내 길을 인도하였다.
하지만 평범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이단 심문관:하느님의 이러한 권력은 무엇인가?
메노키오: 숙련된 일꾼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단 심문관: 당신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보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 천사들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하신 것인가? 아니라면 누가 이들을 만들었단 말인가?
메노키오: 치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듯 그들은 자연에 의해서 가장 완벽한 물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이 나타나자 하느님은 그들을 축복하고 의지와 지성과 기억을 주었습니다.
치즈와 구더기,카를로 진즈부르그, P.189
메노키오가 생각하였을 때 기독교만이 세상의 진리는 아니었다.
그의 생각에 하느님이란 그냥 세상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정통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역시 인정하는 이었다.
메노키오: 내가 만일 터키인이라면 기독교인인 될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일세. 그렇지만 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터키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네.
루나르도: 보지 않고도 미는 사람은 행복하나니.
메노키오: 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네. 그렇지만 하느님이 세상의 아버지이시며 온갖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네.
치즈와 구더기,카를로 진즈부르그, P.291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믿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 자체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뜻에 따라 작성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 그는 심문을 당했고 결국 사형에 처해 생을 마감한다.
메노키오의 삶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에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삶을 살다 결국 사형을 당하긴 하였으나
그래도 줏대 있게 그의 생각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멋있기도 대단하기도 하다.
물론 타당한 근거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였다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역시 종교는 나와 맞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문구 중 가장 무서워하는 문구가 있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나는 이 문구가 너무나 무섭다.
타당한 근거가 없어도 올바르지 않아도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고 믿으라는 것, 무섭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책이었지만
그래도 불만 있는 부분은 꼭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책이 좀 지겹기는 했다.(그래서 졸기도 했…)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 파고 또 파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이 당연할 것이다.
주석도 상당하여서 읽는데 애먹기는 했다.
앞부분은 그랬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뭔가 정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본..
321 페이지부터 336 페이지는 어디 있나요..
그리고 352페이지 뒤에 갑자기 등장한 337페이지.-__-
뭐 좀 지겨워서 뒤로 갈수록 설렁설렁 읽었다지만
책을 만든 이도 뒤로 가면서 함께 설렁설렁한 느낌이다.
평점: 1.5/5
한줄평: 의심하지 말지어다에 대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음에도 지겨움과 파본으로 인한 실망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