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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Sep 17. 2021

입사 후 한 달이 중요하다던데

행복하다고 하면거짓말일까?

 입사 후 한 달이 지났다. 모든 신입사원이 그렇겠지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금세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다들 사회생활 처음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이 들고 퇴사를 고민하고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되묻는다. 나도 물론 별반 다르지 않다. 근무 시간을 8시~5시로 설정해 주중은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새로운 스케줄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게임사에 입사한 나는 들어와 보니 게임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이 길이 맞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퇴사를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다. 행복? 행복까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게 즐겁다. 


 내 즐거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회사에 또라이가 없다. 


 회사의 크기를 막론하고 빌런이 한 명씩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빌런이 없다. 딱히 모난 사람도 없고 눈치 주는 일도 텃세 부리는 일도 없다. 먼저 사장님부터가 꼰대가 아니다. 식당을 가도 멍하니 젓가락, 숟가락 알아서 놓아줄 정도로 나이와 직위를 근거로 행동하지 않는다. 젓가락, 숟가락 대표가 놓는다? 아마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전에 알아서 놨어야지 하는 역꼰대같은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애초에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대표가 그러니까 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나 역시 빠릿빠릿 움직이려고 한다.


둘째, 야근에 눈치 주지 않는다.


 처음 면접을 봤을 때 게임사인데 야근이 없다고 해서 못 미더웠다. 들어와 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경영지원과 마케팅은 야근할 일이 없다. 5시에 퇴근하면 6시가 조금 안되서 도착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반면에 현재 게임을 개발하느라 게임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 쪽은 야근이 조금씩 있다. 근데 야근에 눈치 주지 않으며 일이 좀 많다 싶으면 조금씩 신청해서 더 하다 간다. 솔직히 일이 없어서 야근이 없나 싶었는데 역시 회사라 일이 없을 리가 없고 그냥 열심히 시간 동안 일하다 5시 땡 하고 간다. 불필요한 야근, 상사 눈치 보며 자리 지키는 야근이 없어서 정말 좋다. 이후 게임 출시로 야근할 일이 생겨도 즐겁게 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포괄 임금제도 아니다. 이게 정상인데 참 정상처럼 살기 어렵다.


앞으로의 미래가 이렇게 탁 트였으면


셋째, 업무 자유도가 높다. 


 나는 사수가 없다. 처음 2주 동안은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정말 고민이 많았다.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 같았고 누구도 나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외로웠다. 처음 2주는 대표가 적응 기간을 준 것인지 별다른 오더를 안 줄 거니까 회사 파악하고 아이디어 있으면 달라는 말만 했을 뿐 2주는 거의 자유롭게 일을 했다. 인터넷 기사로 게임 시장 동향을 보다가 지겨울 때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업무를 설정했다. 회사 온라인 매체들을 정리하고 그동안 실적, 프로모션 내용, 자사 상품 관련 기사 관리까지 본격적으로 회사 파악에 나섰다. 


 2주간의 시간이 지나고 대표와 단둘이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교환한 후에는 여러 권한이 있는 계정을 옮겨 받았다. 상품들의 Dashboard를 보니 내가 진짜 마케터가 된 듯했다. 취준생 시절 말로만 듣던 퍼널 분석, 실적 분석, 이탈률 등등 실제로 만나니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제는 직접 회사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과 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일이 일처럼 안 느껴지고 게임 같았다. 게임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인생에서 하는 RPG였다. 가상이 아닌 실전이기에 해내고 싶은 마음도 더 크고 대표도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니 일에 집중하는 정도가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도 이렇게 안 했던 것 같다. 사수가 없어 불안했던 초반과 달리 이제는 사수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모르는 것도 많아 머리가 아프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지만 아직까지는 즐겁다. 


-이 외의 걱정들


 주구장창 좋은 말만 있지만 이 세 가지를 제외하면 다 걱정이고 고민이며 씁쓸한 면도 많다. 스타트업이라 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고 강아지풀처럼 가여운 월급을 보며 언제 월급이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게 할까 고민이다. 솔직히 이미 내 인생은 결정 날 부분은 다 결정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 남들은 이름만 대면 알 기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을 통해 들으면 괜히 죄송스럽고 친구의 결혼 소식에 나는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브런치에서 글을 가장 길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그냥 걱정은 때려치고 앞에 있는 추석 5일 연휴 세트를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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